[음악의이해]청공 윤이상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6.05.10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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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윤 이 상
청공 윤이상 선생 연보
본문내용
한국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
1967년 동베를린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독일로 건너간 후
1971년 독일에 귀화하였다. 독일에서 각광받는 작곡가로 활약하였으며,
베를린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계적인 작곡가로 명성을 굳혔다.
경상남도 통영(統營) 출생. 14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였다.
일본에서 작곡수업을 하였고, 1946년부터 통영과 서울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 뒤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음악학원에서 공부하고(1956∼57) 이어 베를린에서 블라허에게 사사하였다(1958∼59).
1959년 독일에서 열린 다름슈타트음악제 때 을 발표, 유럽음악계의 주목 받았으며, 그후 유럽의 여러 음악제에서 참여하여 이름이 알려졌고, 독일에 정착한 그는 유럽의 현대음악과 한국음악 및 동양음악을 융합하는 작곡세계를 펼쳐나갔다.
1967년 동베를린 간첩사건 관련 혐의로 투옥되어 2년동안 옥고를 치르고 석방된 후 독일에 정착하여 71년 독일에 귀화하였다. 70∼85년까지 베를린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90년에는 북한을 방문, 남북문화교류의 첫 장을 연 범민족통일 음악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84년 9월 윤이상음악연구소를 설립해 윤이상음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연주할 수 있도록 했고, 매년 윤이상음악회를 여는 등 그를 예우해왔다. 때문에 남한에서는 친북인사라는 낙인이 찍혀 독일 귀화 후 한번도 남한을 방문하지 못했다.
1995년 11월 독일 베를린 발트병원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서양의 악기와 기법을 사용하고 극동의 연주방법을 응용한 한국음악의 발전을 도모하였으므로 그의 작품에는 현대 서양의 연주기법을 통한 아시아인의 감수성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또한 그의 오페라는 도교와 음양철학에서 받은 영감으로부터 유래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