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개화 사상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6.05.09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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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개화사상은 구한말에 있어서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그 발생 시기는 1870년대였고 그 뒤 3,40년 간 한국의 정치․경제․문화 전반을 지배하였다.
이처럼 구한말에 있어서 개화사상은 한국사회를 지배하였으나, 개화의 내용을 따져 보면 적어도 3단계로 변천 발전하였던 것 같다. 우선 첫 단계는 1870년대로서 개화는 개국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해외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 개화사상으로 간주되었으며, 둘째 단계는 1880년대로 소위 외국기술을 받아들이어 나라의 富强을 이룩해 보겠다는 사상이었다. 마지막 셋째 단계는 1890년대와 1900년대로 국가의 독립(國權)과 국민의 권리(民權)를 주장하였다. 獨立協會의 활동과 같은 것이 가장 두드러진 개화사상의 발로였다.
여기서 위의 둘째 단계, 즉 1880년대의 開化思想에 대한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80년대는 開化思想의 개화기였고, 한국사회에 새로운 비전을 던져주었던 시기였다. 따라서 開化思想 發展史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목차
1. 서언
2. 개화의 개념
3. 개화사상가의 등장과 그들의사상내용
4. 여언
5. 개화사상에 관한 논문을 읽고..
본문내용
개화라는 말 자체는 근세에 와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한문에는 개화라는 숙어가 있고 그 뜻은 風化敎導하여 세운 의 진보를 꾀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삼으려는 개화는 1880년대 한국의 정치․경제․문화 전반을 지배한 사상 혹은 운동을 나타내는 표어로서의 개화이다.
그러면 1880년대 개화는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을까? 대외적인 개화사상가 전길준의 명저『서유견문』에서 개화의 등급이라는 항목과 최초의 근대식신문창간을 위해 전길준이 쓴 글 을 보면 개화란 차원이 높은 단계의 문명화에 도달함을 말하며 여기서 차원이 높은 단계의 문명화는 선진외국만화를 받아들여 재래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를 창조함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개화 혹은 문명화에 있어서 화의 뜻에는 인도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개화사상이라는 것은 선각자들이 무식한 대중들을 교도하여 문명의 단계로 이끌어 보려는 사상이었다. 이러한 사상은 서양의 계몽주의 혹은 계몽사상과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으며, 개화사상이나 계몽사상은 전근대적인 사회에서 근대적인 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준비기의 사상이었다.
이와 같은 개념의 개화는 일본에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일본에서는 1873년 구미시찰단이 귀국한 뒤로 문명개화라는 새로운 유행어가 만들어졌고, 한편 서양문화흡수에 전력을 다하고 있던 당시의 국가정책에 호응하여 1870-80년대에 그 유행어가 일본사회를 풍미하였다. 개국한 뒤 우리나라의 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을 시찰한 바 있는데, 그들은 일본에서 유행되고 있는 개화라는 용어에 매력을 느끼고 또 그 개념에도 공감을 느끼고 귀국한 뒤로 차츰 사용하게 되었던 것 같다.
참고 자료
* 이광립, 일조각, 『개화사상사 연구』,「개화사상연구」,1997
* 길야성 외, 평화출판사, 「갑신 갑오기의 근대변혁과 민족운동」,1983
* 이배용, 「개화사상, 갑신정변, 갑오개혁에 대한 연구현황과 과제」 『한국사론』 국사편찬위원회, 1995
* 한국근현대사학연구회.『한국근대 개화사상과 개화운동』,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