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동학농민혁전의 경제사적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6.05.02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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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학농민혁적에 대한 연구 자료입니다.
2007년 3월 8일 현재 수정하여 올렸습니다.
같은 주제의 여타의 레포트와는 다른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동학농민혁명’ 의 호칭에서 동학도와 농민군의 관계성
3. 혁명군의 명분, 이념, 행동지침의 제공자로서 동학의 기능
4. 혁명군의 군사조직, 지도체계, 정훈교육, 통신체계의 공여자로서 동학조직
5. 남북적 갈등과 전투력의 손상: 해월-전봉준 관계와 루터-뮌처 관계의 비교
6. 결론
본문내용
‘동학농민혁명’이라는 호칭에서 동학도와 농민군의 관계
동학혁명기간을 ‘동학기간’(1860-1905)으로 설정하는 것처럼 광폭으로 잡지 않고, 삼례역 聚會事件(1892.11월 1일)부터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 성두환등 동학농민군 지도부가 서울감옥에서 교수형을 받는 사건(1895년 3월29일) 까지 약 3년간의 짧은 기간(1892-1895)을 연구범위로 한정한다. 그동안 충분하리만큼 논의된 갑오농민운동의 사건적 성격에 관한 논의 곧 그것의 혁명적 성격부여 여부, ‘동학란’이라는 폄하시키는 부끄러운 칭호부터 농민반란, 농민전쟁, 농민혁명, 동학혁명, 갑오동학농민운동, 갑오동학농민혁명등등 다양한 표현자체의 변화과정이 함의하는 내용을 다시 재론하지 않겠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갑오동학농민혁명’ 이라고 생각하며 여기에서는 줄여서 ‘동학농민혁명’이라고 약칭하고 이 칭호가 함의하는 의미를 음미하려고 한다.
‘갑오동학농민혁명’이라는 명칭에서 ‘갑오’는 혁명이 발생한 역사적 시점(1894)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아무런 혼동이나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타나는 ‘동학 농민혁명’ 이라는 어휘에서 ‘동학농민’이라는 두 단어의 상호관계성은 자명하지 않고, 해석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
첫째번 해석 가능성은 앞의 단어 ‘동학’이 포괄적 상징어로서 갑오년에 일어난 농민혁명의 배경이나 환경을 두루뭉실하게 조명한다고 생각하는 ‘포괄적 상징어’로서 파악할 수 있다. 이 경우, 농민군과 동학도와의 직접관계성은 매우 약하게 파악되거나 부정될 수도 있다. 첫 번째 견해는 갑오혁명의 주체나 실체는 동학도가 아니고 농민군이며, 사건의 핵심은 종교문제가 아니고 경제정치문제라고 본다. 기껒해야 동학은 갑오농민혁명을 발생시킨 도화선으로서 기능한 것이고, 이론적 원인규명을 명분론에서 찾고자하는 학자들이 붙인 포괄적 시대상황을 파악하는 어휘일 뿐이라고 보는 경우이다. 줄여말하면 최수운의 득도(1860)로부터 시작해서 갑오경장(1894-1896)에 이르는 한세대 30여년간의 근대한국사의 격동기에 가장 큰 원인 제공의 단체가 동학이므로 ‘동학농민 혁명’이라고 ‘포괄적 상징어’로서 이해하는 경우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