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통도사의 금강계단
- 최초 등록일
- 2006.04.30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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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통도사의 금강계단과 금산사의 방등계단을 비교하였습니다.
목차
1. 머리말
2. 통도사의 창건과 그 전개
3. 대웅전과 금강계단
4. 통도사의 대웅전과 금산사의 적멸보궁
5. 맺음말
사진자료
본문내용
Ⅳ. 通度寺의 大雄殿과 金山寺의 寂滅寶宮
삼국통일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석탑은 그 전형양식을 완성하게 되는데 오늘날 이들 형식과도 다른 석조계단형 탑파의 한 형식이 전래되어 주목된다. 이들은 ‘계단사리탑’ 이라 불려지는 것으로서 수계의식을 집행하던 전통적 계단을 지칭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신라 자장법사 창건의 금강계단이고, 또 다른 하나는 眞表律師의 중창으로 전해지는 김제 金山寺의 方等戒壇이다.
금산사의 방등계단은 송대(松臺)라고 부르는 미륵전의 북쪽 높은 대지에 있다. 또한 이 계단의 중앙에 보물 제26호인 부도가 1기 있어 그 형태에 따라 석종형(石鐘形) 부도라고 부른다. 방등계단의 수계법회(受戒法會)를 거행할 때 수계단을 중앙에 마련하고, 그 주위에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둘러앉아서 계법을 전수하는데 사용했던 일종의 의식법회 장소이다. 이러한 예는 통도사와 개성의 불일사(佛日寺) 등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한국 불교의 독특한 유산이다.
『華嚴經』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처음 7일 동안 시방세계 불보살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한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선정에 들었다 한다. 이때 부처 주위에 많은 보살들이 모여 부처의 덕을 칭송하였고, 부처는 법신인 毘盧遮那佛과 한 몸이 되었다. 따라서 적멸보궁은 본래 둥그스름한 언덕 모양의 戒壇을 쌓고 불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가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던 것이었다. 진신사리는 곧 부처와 동일체로, 부처 열반 후 불상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숭배 대상이 되었으며 불상이 만들어진 후에도 소홀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적멸보궁의 편액을 붙인 전각은 본래 진신사리의 예배 장소로 마련된 절집이었다. 처음에는 사리를 모신 계단을 향해 마당에서 예배하던 것이 편의에 따라 전각을 짓게 되었으며, 그 전각은 법당이 아니라 예배 장소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불상을 따로 안치하지 않았다. 다만 진신사리가 봉안된 쪽으로 예배 행위를 위한 불단을 마련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