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역사]조선왕조실록
- 최초 등록일
- 2006.04.27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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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의 유산 중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정해져 있는 조선왕조실록은
우리의 역사적 지위와 함께 위상을 높여주고 있다.
그러한 조선왕조실록이 어떻게 편찬되었으며,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지켜져 오기까지 어떠한 일이 있었으며 어떠한 방법으로
보존해 왔는지에 대하여 기술하였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자료수집
2.실록편찬
3.<조선왕조실록>의 봉안
4.사고에 보관
5.실록 관리
본문내용
고려 전기에는 개경의 춘추관에만 실록을 보관하였다. 그러다가 고려 고종 14년에 해인사에 외사고를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외사고이다. 조선전기부터 실록은 서울에 있던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 전주, 성주 등 지방의 중심지에 분산 보관하였다. 이는 『고려실록』이 외침의 과정에서 모두 없어진 경험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지방의 중심지는 화재와 약탈 등 실록이 소실 될 수 있는 위험성이 항상 제기되었다. 실제 중종 대에 비둘기를 잡다가 사고에 화재가 발생하여 실록이 소실된 사건이 발생하였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주사고본을 제외한 모든 사고의 실록이 소실되면서 사고를 험준한 산지에 보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조선후기에 강화의 마니산(이후 정족산으로 옮겨짐), 경북 봉화의 태백산, 강원 강릉의 오대산, 평안 영변 묘향산에 사고를 설치하고 이곳에 실록을 보관하였다. 이처럼 산간지역에 사고를 설치하면 보관이나 관리면에서 큰 불편이 따랐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실록의 기록이 후대에까지 널리 보존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고 산간 오지에 실록을 보관하였던 것이다. 사고가 산간지역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승려들의 힘을 빌리기도 하였다. 사고를 지키는 사찰을 수호사찰이라 하였는데 정족산 사고의 전등사, 태백산 사고의 각화사, 오대산 사고의 월정사, 적상산 사고의 안국사가 바로 수호사찰에 해당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