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법]엘리자베스빈민법, 중상주의와노동윤리, 신빈민법, 박애사업
- 최초 등록일
- 2006.04.27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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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복지 발달사에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네가지 부분 정리
목차
1. 엘리자베스 빈민법
2. 중상주의와 노동윤리
3. 신빈민법의 3가지 원칙
1)열등처우의 원칙
2)작업장 입소자격 조사
3)행정의 중앙집권화와 통일
4. 박애사업
본문내용
1. 엘리자베스 빈민법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튜더 빈민법에서 집대성 된 것으로 부랑의 원인을 보다 깊이 인식한 법률이다. 그러나 농민을 농촌에서 내몬 인클로저 운동과 1594~1597년의 계속된 흉작, 신세계로부터 귀금속의 대량 유입으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가 부랑자를 증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엘리자베스 여왕은 부랑자 문제가 억압과 교구의 구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다 합리적인 조치를 마련하는데 그것이 분류화였다. 즉, 노동능력 빈민, 노동무능력 빈민 그리고 빈민아동으로 분류하여 그에 상응하는 치유를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능력 빈민은 교정원이나 작업장에서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노동무능력빈민은 자선원에 집단으로 거주시켰으며 빈곤아동은 도제로 보내었다. 그러나 빈민들을 위와 같이 분류하여 보호한다는 방침은 그 후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다. 구빈원과 작업장은 작업장으로 동일 되어갔고, 노동능력이 없고 고아나 버려진 아동, 노인 등 무분별하게 채워 그저 그들을 생존시키는 데만 급급했다. 한편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구빈의 책임을 교회가 아닌 정부가 최초로 졌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의가 있다. 이 후 작은 교구의 범위를 넘어 전국적인 규모로 변모해 나가게 된다. 이 법의 제도화 이 후,1834년 신빈민법 시행 전까지 지방기금에 의한 지방 관리에 의한 지방 빈민에 대한 구빈행정이 명백한 원칙으로서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 법도 실제로는 수많은 문제점을 야기 시켰다. 해당 교구 내 결혼은 가능한 억제 시켰으며 그 이유는 새로운 부양자의 발생을 꺼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수의 사생아가 출생하게 되었고 빈곤아동들은 거의 노예에 가까운 비참한 대우를 받았으며 모든 유형의 빈민을 구제할 능력을 가진 교구는 극 소수였으며 무보수의 구빈감독관은 자신의 일에 성실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부패한 경우도 있었다.
참고 자료
사회복지발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