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고구려와 백제의 부흥운동
- 최초 등록일
- 2006.04.26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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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고대사 레포트입니다.
이 부분은 자료가 잘 없는데 최대한 열심히 자료를 모아 한 거예요^^
물론 에이뿔 받았구요~^^
목차
Ⅰ. 머리말
Ⅱ. 고구려의 멸망과 부흥운동
1. 고구려의 멸망
2. 고구려의 부흥운동
(1) 당의 고구려 지배
(2) 고구려 유민의 저항
(3) 고구려 유민의 향방
Ⅲ. 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
1. 백제의 멸망
2. 백제의 부흥운동
(1) 백제 부흥군 봉기의 배경
(2) 부흥운동의 전개
Ⅳ. 맺음말
본문내용
백제의 부흥운동은 패망(660, 7, 18) 직후부터 시작되어 마지막으로 임존성(任在城)이 함락(663, 11)될 때까지 대체로 3시기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제 1기는 백제유민이 봉기하여 저항을 시작한 기간이라 볼 수 있고, 제 2기는 부성의 나ㆍ당연합군을 고립시키고 양도(糧道)를 끊어 핍박된 상황에 처하게 하였으며 한편 풍왕(豊王)을 옹립하여 백제왕통을 회복하려는 기간으로 파악되며, 제 3기는 부흥군 지도층의 내분으로 인한 쇠망기라 할 수 있겠다.
1) 제 1기(660, 7∼661, 1)
이때에는 부흥군이 봉기하여 나ㆍ당연합군을 추격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비록 수도인 사비성은 함락되었으나 많은 성들이 일어나 수도 탈환을 꾀하였으며 그 중 두시원악에서는 좌평 정무가 임재성에서는 복신, 도침, 흑치상지 등이 세력을 규합하여 나ㆍ당연합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소정방은 나ㆍ당군을 동원하여 600년 8월 26일 임존성을 공격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그러나 소정방은 백제 민들의 부흥운동은 크게 염려하지 않고 9월 3일에는 유인원이 거느리는 일만 명의 병사와, 김인태 휘하의 신라군 7천으로 사비성을 지키게 하고, 소정방은 의자왕 등을 포로로 하여 철수하고 말았다.
소정방의 주력부대가 사비성에서 물러가자 백제유신들의 부흥운동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왕족 복신과 승려 도침은 주류성을 근거로 군사를 모으고 일본에 가있는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받들고 왕조의 부흥을 선언하니 서북부의 많은 성들이 이에 호응하였다.
참고 자료
김갑주,〈高句麗의 滅亡과 復興運動〉,《統一期의 新羅社會硏究》,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1987
김용만,《고구려의 발견》, 바다출판사, 1998
노중국,《백제부흥운동사》, 일조각, 2003
심정보,〈백제의 부흥운동〉,《백제의 역사》,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1995
임기환,《고구려 정치사 연구》, 한나래,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