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1950,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6.04.18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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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50,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에 대한 고찰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 흑인 차별의 실태
2. 흑인 민권사상의 형성과 민권운동기구
3. 흑인 민권운동의 대두
4. 사회적 측면에서의 민권운동
5. 정치적 측면에서의 민권운동
6. 경제적 측면에서의 민권운동
Ⅲ. 맺음말
본문내용
Ⅱ. 본론
1. 흑인 차별의 실태
남북전쟁이후 실생활에서의 차별과 분리는 법률로써 확정되어 사회전반에 적용되었다. 흑인들은 `Jim Crow`법이라고 지칭되는 이러한 일련의 법률의 폐지를 위해 노력하고 항상 그에 반대하는 흑인들의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이후 지속적이고 활발한 민권운동으로 흑백분리를 명시한 법률의 철폐를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오랜동안 관습적으로 지속되어온 차별과 분리를 실생활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같은 배격에서 흑백분리 법의 제정과 실태를 알아보는 것은 당시 흑인들의 생활과 민권운동의 출현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1883년 대법원이 1875년의 민권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자 납부 주들은 본격적인 인종분리를 위한 법제정을 시작하였다. 1890년대는 짐 크루우법에 의하면, 흑인들은 음식점, 호텔, 병원은 물론 공공오락장소, 극장, 엘리베이터, 공원의 출입이 금지되었고 심지어는 묘지에까지 흑인들과 분리되었다. 남부의 각 주에서 실시되어온 흑, 백 분리와 차별은 1896년 대법원이 Plessy 대 Ferguson 판결에서 공공시설에서 "분리하되 평등하면 된다"의 합법성을 인정함으로써 법률로 흑백분리를 확립하였으며 또한 이러한 흑백분리는 곧 차별을 의미하였다.
이로써 흑인들은 단단한 법적 형태로 구성된 백인들의 태도로 인하여 열등한 인종이라는 딱지가 붙게 되었는데, 각 공공장소마다 "Colored"와 "White only"라는 표시가 등장하였다.
일상생활에서 흑백간에 발생하는 분리와 차별은 단지 공공시설에서 뿐 아니라 새로운 인종질서를 시행하고 확립시키려는 백인들의 폭력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재건기 이후 백인 집단의 승인을 얻은 흑인들에 대한 린치는 흑인들의 살해, 수족절단, 욕설등이 수반되었고, 1890년과 1910년 사이에 2000건이상 발생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린치에 법적규제는 거의 없었고, 설사 백인이 흑인을 살해, 폭행한 혐의로 구속되어도 대부분 가벼운 벌을 받거나 방면되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흑인들은 자신들의 가치관과 공동체적인 유대감을 상실해 갔고 미국 사회로의 진입을 위해 그들 주위에 있는 교육, 문화, 종교 단체들과 유대관계를 갖고자 했지만 항상 백인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결국 미국 흑인들은 사회의 밑바닥에 위치하게 되었다.
북부로부터 흑인 문제를 일임받은 남부인들은 수정헌법 제15조에 의해 보장되었던 흑인의 참정권을 박탈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감소시키고자 하였다. 즉 백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을 자신들에게 종속시키고자 했으며 참정권의 박탈은 백인에의 종속의 법적인 표현이었다. 즉, 1877년 조지아 주에서는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투표권 등록을 한 해에 인두세를 납부해야하고, 21세 이후에는 매년 납부하여야 투표권을 주는 누적인두세법안을 제정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