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한자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6.04.16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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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자의 기원, 발전, 변화, 개혁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1. 한자의 기원
2. 한자의 조자 원칙 - 육서
3. 한자의 발전과 변화
4. 한자의 변혁을 위한 노력
본문내용
한 대의 공식자체로 지정된 예서의 탄생시기는 소전과 같은 진대이다. 예서는 이미 진시황 때 대전․소전 등과 더불어 八體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晉이래로 전해오는 설에 의하면 秦의 獄吏(법률소송부처의 하급관리) 程邈이 대전의 번다한 글자체를 삭제하고 수정하여 간략히 만든 글자체를 진시황에게 바쳤는데 이를 이름하여 예서라 하였다고 한다. 문헌기록들과 출토된 秦簡 등 유물로 볼 때 예서는 진대에 書吏들이 관아의 번다한 행정사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속기체 비슷한 기존의 통속약자들을 사용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서담당말단공무원이라는 뜻의 서리의 다른 말인 예인들 사이에서 통행하던 글자체라고 해서 예서라는 이름이 붙게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진대에는 어디까지나 소전이 국가의 공식자체였으며, 예서는 어디까지나 실용적 측면에서 서리들과 민간에서 쓰이던 보조적인 자체로서 장중한 상황에는 사용되지 않았으며 상층통치계층에서는 업신여기던 글자체였었다는 사실은 예서라는 이름에서도 나타난다. 예서는 ‘佐書’라고도 하였다. 한 대로 가면 소전보다 훨씬 간략하게 정형화된 이 예서체가 실용성에서 우위를 점하게되어 국가의 공식자체로 발돋움하게된다. 한대이후 소전은 주로 인장이나 金石文銘文의 글자체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篆’이 ‘도장’으로, ‘篆刻’이 ‘도장 새기다’라는 뜻으로 화한 배경이 되었다. 예서는 글자체에서 상형적인 요소가 완전히 사라지고 필획도 간략화하였고 직선화하였으며 글자모양도 네모꼴로 방정하게 되었다. 후한말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晉대부터 통용되었던 해서체와 거의 차이가 없어 이를 근대문자로 본다.
참고 자료
공상철 외,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 다락원, 2001
최영애, 『중국어란 무엇인가』, 통나무, 1998
J.노먼(전광진 역), 『중국언어학총론』, 동문선,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