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나말여초 불교의 변화
- 최초 등록일
- 2006.04.12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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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상사 수업시간에 발표한 자료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나온 한국사11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편에서
`불교의 변화`편을 요약한 발제문입니다.
불교의 내용이 어렵다보니 제가 쉽게 만들려고 한자를 모두 번역해서 보기 쉬울 껍니다.
목차
1. 교학불교의 전개
(1) 화엄종 (2) 법상종
2. 선종의 흥륭
(1)북종선의 전래와 남종선의 도입
(2)선종산문의 성립
- 구산선문에 대한 간단한 요약
(3)선종사상의 경향
3.미륵신앙
(1)미륵의 출현과 말법신앙
(2)궁예의 이상세계 건설
4. 유.불.선. 3교의 융합
(1)유.불 2교의 교섭
(2)유.불.선 3교의 조화
본문내용
1. 교학불교의 전개
(1) 화엄종
신라 하대에 지방호족이 대두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선종이 크게 유행하자 교종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종은 교종의 논리를 추월하려는 것이며,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어서, 공관의 이해와 실천수행을 함께 수학하는 화엄사상을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았다. 의상은 십찰에 전교할 것을 명하였는데 이러한 10찰은 신라 의상계 화엄종에 속해 있었으므로 신라 하대에 화엄종파가 계속 유지되어 왔음을 알려준다.
이외에도 신라 하대에 화엄종 승려들의 활동이 계속 이어져 갔다. 원성왕대에는 화엄종 승려로 생각되는 지해․묘정․연회 등이 있었다. 애장왕대에는 정수가 국사에 봉해진 기록이 있는데 신라 하대에 화엄종 승려가 국사에 봉해지거나 또는 교종 승려가 여전히 국사에 봉해지고 있었던 것은, 당시까지도 화엄종 내지 교종 세력이 강인하게 온재하였음을 알려준다. 그래서인지 신라 하대에 선종이 유행하는 분위기속에서도 선사들이 화엄사상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나말에 해인사에는 화엄종의 두 사종이 있었다. 한 사람은 관혜공으로 후백제의 거괴인 견훤의 복전이 되었고, 또 한 사람은 희랑공으로 고려 태조의 복전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관혜공의 법문을 남악으로, 희랑공의 법문을 북악으로 불렀다. 북악파가 태백산의 부석사를 근거로 한 의상계였다면, 남악파는 지리산의 화엄사를 근거로 한 연기계의 화엄종이었다고 했다. 신라말의 남․북악파의 대립을 북악인 부석사를 중심으로 하는 화엄종과 남악인 화엄사를 중심으로 하는 화엄종파 간의 대립으로 보는 관점에 서 있으면서도, 이와는 달리 파악하여 북악파가 의상계라면, 남악파는 법장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의 사상은 서로 대조적이어서, 후대의 화엄 사상가들은 어느 누구라도 의상과 법장의 화엄사상을 절충하고 조화하는 면에서 논리를 전개시키고 있다.
참고 자료
한국사11-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