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조로아스터교
- 최초 등록일
- 2006.03.31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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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오늘날의 조로아스터교인들
타종교와 조로아스터교와의 관계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로아스터교의 교리가 변화하는 과정은 알렉산더 대왕이 침략하여 공백기가 생긴 다음 뒤이어 아케메니아 왕들의 치하에 들면서 시작되었고 사산 왕조(기원 후 226~651)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이 긴 세월 동안 조로아스터교가 다른 근동종교들, 특히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회교 이전 아랍인에게 미친 영향은 사상의 측면에 관한 한 대단한 것이었다. 메카 출신의 한 젊은 낙타 몰이꾼은 조로아스터교와 유태인인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최후의 심판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 자신도 한 사람의 예언자가 되어 잘 믿지 않으려 하는 시민들에게 최후의 심판이 도래하고 있음을 경고하며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가는 훌쩍 고향을 떠나 군인예언자로서의 편력을 시작한다. 사실상 그의 편력은 아라비아 세계를 변형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유태교와 기독교 세계의 기반을 뒤흔들어 놓았고 조로아스터교는 거의 소멸시켜 버리기에 이른다.
회교도 정복의 영향
무하마드의 후계자들은 대단히 민첩하고 광대하게 정복 사업을 수행하였다. 636년에는 시리아를 기독교인의 손에서 빼앗았으며 639년에는 이집트를 점령해 버렸다. 637년 이후 십년 사이에는 사산 왕조가 공략되었고 651년(652년이라고도 한다)에는 마지막 남은 사산 통치자들이 기습받아 살해되었다. 이로서 조로아스터교는 거의 치명적인 강타를 맞은 셈이었다. 그러나 그 후 일세기가 좀 넘는 동안에는 아랍 정복자들이 전면적인 개종 압력을 가해 오는 일은 없었다. 『코란』에 의하면 성전(聖典)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게 대하라고 되어있고, 유태인이나 기독교도와 마찬가지로 조로아스터교도도 성전을 그것도 더구나 아주 풍부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압력이 가해지기 시작한 것은 회교도들의 정복이 이루어진 후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서였으며, 그것도 아랍인이 직접 자행한 것은 아니었다.
한편, 아랍인에게 정복당한지 백 년 사이에 많은 조로아스터교인이 페르시아를 떠났다. 8세기 이후 엄청난 수가 인도로 이주해 갔다. 육로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인도에 이른 사람도 있었고 연안을 타고 내려가 페르시아만 입구 근처의 한 도시에 이르렀다가 다시 한 섬으로 옮겨가고 결국에는 인도로 떠나 버린 사람도 있었다.
참고 자료
「비교종교론」채필근, 대한기독교서회
「세계종교사」J. B. 노스, 현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