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근세사]송의 대외관계
- 최초 등록일
- 2006.03.22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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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송과 남송의 대외관계 레포트!
요,서하,고려,몽골의 정치변화에 따른 대외관계에 대해 10page분량으로
정성껏 썼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宋과 遼의 관계
1) 宋과 遼의 대립
2) 전연의 맹약
3) 宋과 遼의 교류
2. 宋과 西夏의 관계
1) 西夏의 건국과 宋
2) 西夏와의 충돌, 화의
3) 宋과 西夏의 교류
3. 宋과 高麗의 관계
1) 정치적 교류
2) 경제적․문화적 교류
4. 宋과 金의 관계
1) 정강의 변과 북송의 멸망
2) 南宋의 정치과 멸망
5. 몽골 제국의 발전과 宋의
멸망
Ⅲ. 결론
본문내용
송과 요의 대립관계는 五代 때 거란에 내어준 燕雲 16州를 되찾기 위하여 송의 태종이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면서 처음 시작되었다. 태조는 북방의 대제국 거란의 국내사정이 악화되어 있을 때, 국내 통일과 연운 16주 회복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통일업무를 완수하였다. 태조는 거란과의 전쟁을 지나치게 신중히 고려한 나머지 정벌의 시기와 정벌 지역 우선순위를 잘못 정하여 연운 16주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분열 종식과 실지수복의 과제는 태종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태조가 재위하고 있는 동안 국경에서 부분적인 충돌은 종종 있었지만 송․요간에 국운을 건 전면충돌은 없었고 태조 開寶 7년부터 태종 太平興國 4년까지 6년간은 두 나라 간에 평화가 유지되면서 쌍방이 정식으로 사신을 보내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태종 역시 연운 16주 회복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거란과의 관계 개선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예로, 이전까지의 밀무역이거나 비공식적 교역에 지나지 않았던 무역의 형태를 바꾸어 鎭․易․雄․覇․滄州 등 국경도시에 각무(榷務)를 설치하고 常侍官과 內侍를 파견하여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그리고 거란의 사신이 오면 接伴使를 파견하여 국경까지 호송하게 함으로써 대거란 외교에 적극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세계사 교과서(고등학교)
중국사, 역민사,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