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라 금석문 자료에 대한 검토
- 최초 등록일
- 2006.03.05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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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라 금석문 연구에 관한 자료로 신라시대의 금석문의 종류와 그와 관련된 역사적 내용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금석문의 역사성을 알아 볼수 있는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1.금석문이란
2.6세기 신라와 신라 금석문의 특징
3.금석문의 종류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금석문이란..
금석문이란 글자 그대로 쇠붙이나 돌에 새긴 글씨를 말한다. 문헌으로 전하는 것은 애매하거나 진실성이 의심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금석문은 그때 사람의 손에 의해 직접 이루어진 구체적인 생의 기록이므로 가장 정확하고 진실한 역사적 자료가 된다. 우리나라의 금석문은 중국과는 달리 쇠붙이보다는 돌에 새긴 것이 많으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비석 종류이다. 신라는 삼국 가운데 문화 발전이 가장 뒤졌지만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수도를 옮긴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그 문화유적이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양의 금석문이 남아 있다. 신라에서 언제부터 한자가 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체로 불교와 함께 한자와 한문학이 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신라는 한자를 받아들인 뒤 얼마 되지 않아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진흥왕의 순수비나 대구의 오작비, 그리고 남산신성비와 같은 귀중한 금석문 자료를 남기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무덤 앞에 세워지는 능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금석 유물이 만들어진다. 신라는 통일 직후 중국의 제도를 따라 무열왕릉에 처음으로 신도비를 세웠지만, 이곳에 전시된 문무왕릉비와 흥덕왕릉비 단편를 제외하고는 비신이 남아 있는 것이 없어 그 내용을 고증할 길이 없다. 비록 능비의 완전한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무열왕릉에 남아 있는 귀부와 이수, 그리고 김인문이 썼다고 하는 두전만 보아도 당시의 금석문은 천하일품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전시된 금석문 가운데 명활산성 작성비와 남산신성비는 당시 성을 쌓을 때의 사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김인문묘비·문무왕비·흥덕왕릉비·이차돈순교비는 개인의 생애를 기록한 능묘비의 일종이다. 또 두 청년의 맹세를 기록한 임신서기석은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현재 남아 있는 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염거화상 부도에서 나온 탑지는 금동판에 새긴 금문이다.
참고 자료
금석문과 신라사/주보돈,지식산업사,2002
신라 중고 금석문 연구/조동원,1993
한국 금석문 연구의 현황과 과제/주동원, 국사편찬위원회,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