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고궁산책
- 최초 등록일
- 2006.01.26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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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울에 있는 여러 궁들에 대한 소개와 그 시절 궁에 대한 역사가 소개되어있습니다...경복궁 덕수궁...등등 각 건물과 조형물에 대한 소개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I. 경복궁
1. 조선의 정문 광화문
가. 광화문의 해태 상
2. 식민 통치의 조선 총독부 청사
3. 조전 왕조의 정신인 근정전
가. 왕과 함께 하는 오봉산 일월도
나. 경복궁의 휴식 공간 경희루
4. 일본의 의도적 만행인 사경전과 수정전
5. 역사적 한이 있는 건청궁터
Ⅱ. 창덕궁
1.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과 입구인 금천교
2. 현대적 설비시설인 대조전
3. 창덕궁의 후원인 낙선재와 퇴색되어 버린 삼량전
4.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 비원
Ⅲ. 창경궁
1. 명정전과 그 뒤에 있는 통명전
2. 과거 수많은 전각이 헐려진 잔디밭
Ⅳ. 덕수궁
1. 석어당과 비운의 왕 고종의 침소 함녕전
2. 덕수궁의 서양식건물 석조전과 정원
Ⅴ. 경희궁
본문내용
1. 조선의 궁문 광화문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의 정문으로 광화문을 건설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문을 열면 어진이가
들어오고 문을 닫으면 부정한 백성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뜻을 가진 오문이라 하였으나 세종대왕 때 광화문이라고 명칭을 바뀌게 되었다.
일제 침략 때 일본은 조선 왕조의 권위와 정통성을 훼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광화문을 헐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다.
6.25 전쟁으로 인하여 소실된 광화문을 1968년 다시 그 자리로 옮겼으나 콘크리트 기둥에 철판 문짝을 사용하여 복원 시켰다. 이것은 당시 문화재에 대한 관리 당국인 정부의 문화재 정책을 볼 수 있는데 과연 겉모습만 대충 만들면 된다는 안일한 태도를 볼 수 있다. 그러한 엉터리 복원을 하였으니 참으로 안타까우며 지금이라도 콘크리트를 떼어내고 예전의 원형 그 모습으로 복원을 시켜야 할 것이라 생각을 한다.
가. 광화문의 해태 상
해태는 전설속의 동물로 정의를 수호하고 불의를 물리친다는 동물로 광화문 옆에 놓임으로써 조선 왕조의 번영과 안정을 나타내고 지켜주는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책에서는 원래 광화문 80~90m떨어졌으나 일제가 조선총독부 옆으로 석상을 가지고 가 버렸고 해방 후 3공화국시절에 광화문이 복원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옮겨지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왕실의 안정을 최우선하는 당시 구조에서 그 안정을 뜻하는 석상을 가져감으로써 조선에 대한 일본의 치졸한 정책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2. 식민 통치의 조선 총독부 청사
광복이 된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런 감정이 남아있는데 그 당시 총독부는 조선 오백년 역사를 끊기 위해 근정전과 광화문의 중앙 일직선상에 위치로 세웠고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삼국시대부터 한국은 본래 일본 땅이었으며 조선인은 본래의 주인을 찾은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또한 백제왕이 일본 왕에게 준 칠지도 등을 왜곡 날조함과 동시에 광개토대왕의 비문을 훼손하였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독도문제와 같은 일들이 최근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있었던 고질적인 병이라 생각을 하니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선 총독부는 96년에 철거하여 지금은 그 터에 있던 홍예문과 영제교 등을 복원 시켰는데 영제교는 당국의 무성의한 감독과 졸속시공으로 엉터리 복원을 하였다. 내부는 철근 콘크리트로 하였으며 외부는 콘크리트 위에다가 돌 조각을 붙여 겉모습만 갖추었다. 위치 또한 근정전 동쪽이 아니라 긍정문 앞으로 했기 때문에 콘크리트 구조물과 위치 모두 원형으로 복구 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