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와 불교]한국 미륵신앙의 시대적 흐름
- 최초 등록일
- 2006.01.13
- 최종 저작일
-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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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미륵신앙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살펴본 보고서입니다..
좋은 평가를 받았던 리포트인 만큼 많은 도움이 될것입니다^^!
목차
● 개 설
● 미륵 신앙의 역사
1. 삼국시대
2. 통일 신라 시대
3. 고려 시대
4. 조선 시대
5. 근 대
본문내용
3. 고려 시대
신라 시대 이후 올바른 미륵 신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오늘날까지 미타 신앙, 관음 신앙과 함께 하나의 전통으로서 여전히 대중들 사이에 살아 남아있다. 다만 고려 초기 이후 특별히 미륵 신앙에 관심을 가진 승려가 많지 않았고 미륵 신앙을 중요시하는 법상종이 선종이나 교종의 화엄종 세력에 밀려났으므로 신라 시대와 같이 열렬함과 독특함을 함께 갖춘 미륵 신앙은 다시 꽃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특수 사찰을 중심으로 하여 미륵 신앙은 왕실 및 민중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다. 현종은 모후의 원찰로 개성 현화사를 창건한 뒤 법상종 승려들을 주지로 임명함으로써, 현화사를 근거로 법상종은 미륵을 신봉하는 고려 중기의 대표적 교단의 하나가 되었다. 이 절에서는 현종의 발원에 의하여 매년 미륵보살회와 아미타불회가 열렸다. 특히 매년 4월 초파일부터 3일동안 개최되던 미륵 보살회는 국가의 번영과 사직의 안녕을 축원하기 위함이었다. 현화사 금당의 주불은 미륵불이었고 특히 승려 혜덕은 미륵보살상을 모시고 매년 승려를 모아 귀의하게 하였으며, 입적하는 순간까지도 미륵의 명호를 염송 하였을 정도로 미륵 신앙에 독실하였다. 이상은 주로 왕실 주변에 있었던 미륵 신앙의 사례이다. 민간에서도 이 미륵 신앙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미륵불을 주불로 모신 사찰로는 금산사나 현화사 외에도 관촉사, 도솔사 등이 있었다. 광종때 승려 혜명에 의하여 창건된 충남 논산 관촉사에는 목종 9년(1006년)에 완성된 미륵 석불상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이 미륵 불살에 얽힌 영험 설화는 당시 사회의 미륵 신앙의 폭넓은 유포를 알게 해준다. 백운 이규보의 문집에 의하면 전라북도 옥구에서 장사로 가는 길가에 도솔사가 있었고, 그곳에 미륵석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지금 현재의 전북 고창 선운사의 도솔암을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하던 고려 후기의 민간에는 미륵 신앙이 상당히 성행하고 있었던 것 같다. 미륵불이 하생하여 교화하는 용화삼회의 참여하여 미륵불에게 향을 공양할수 있기를 발원하며 향목을 해변에 묻어두는 풍속이 행하여 지고 있었음은 곧 미륵하생신앙의 유행을 말하여 주기 때문이다. 이같은 미륵하생신앙은 고성 삼일포매향비와 경남 사천매향비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우왕 13년(1387년)에 세워진 사천매향비에 의하면 1000인이 계를 모아 발원하였고 1309년에 세워진 삼일포매향비에 의하면 지방관 10여명을 비롯한 그 비속들이 함께 발원하고 있다. 특히 삼일포매향비의 경우는 동해안의 아홉 곳에 향목 1500조를 묻었던 것이다.
고려말에도 또 한차례 자칭 미륵불이 나타났다. 곧 우왕때의 니금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땅을 깊이 파고 마른 콩 수십 섬을 쌓은 뒤, 그 위에 미륵불을 안치하여 흙으로 덮고는 땅에서 미륵불이 솟아나리라 선언하였다. 그가 땅에 닿아 계속해서 물을 붓자 콩이 불어나면서 돌미륵이 땅위로 솟아올랐으므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를 믿고 존경하였다고 한다.
참고 자료
장지훈 ‘한국 고대 미륵신앙 연구’(집문당, 1997년)
김삼룡 ‘미륵불’(대원사, 1991년)
미륵성지 금산사 개산 1400주년 기념불사 추진위원회 ‘金山寺와 한국의 미륵신앙’ : 金山寺
開山 1400주년 기념 학술회의(19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