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펠릭스 나다르의 생애와 작품세계
- 최초 등록일
- 2006.01.12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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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상으로보는 프랑스 예술산책, 숭실대학교, 이찬규 교수님시간에 발표했던
프랑스 초상사진가 펠릭스 나다르에 대한 발표에 대한 레포트 입니다.
나다르에 대한 전반적인 생애와 약력 사진의 특징과 사진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서적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였고, 주요 사진에 대한 논문을
참고하여 나다르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더 할 수 있었습니다.
나다르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갖추었다고 자신합니다.
목차
1. 약력
2. 나다르 생애
3. 시대적 배경
3.1 픽토리얼리즘
3.2 초상화와 초상사진
4. 나다르의 사진이 성공한 까닭
5. 나다르의 활동
6. 나다르 사진의 특징
7. 강한 실험정신
본문내용
사진은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서서히 발명되었고 사진의 최종 발명가는 프랑스의 다게르(Daguerre 1787∼1851)가 되었다.
그 다음으로 나다르(Nadar 1820∼1910)는 당대 가장 유명한 초상사진작가로서 명예와 부를 한 손에 쥐었다. 원래 직업은 언론인이었으며 나다르란 이름으로 개명하여 정치적 풍자화를 그렸던 사람으로서 부르주아 엘리트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다. 그런 그가 어느날 샤베트라는 친구로부터 사진관을 차리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지 않아도 신문마다 시진이야기로 떠들썩하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대성황이라는 말을 들었던 차였다. 1853년 마침내 그는 생라지르 113번지에 새로운 직업으로 유행인데다가 안정적인 수입까지 보장된 사진관을 개업한다.
나다르 사진관은 시작부터 대성공을 거두었다. 전직 명망 높은 엘리트 지식인 출신이라는 유명세가 차별화에 성공한 것이다. 나다르 스튜디오는 유명인사들이 들락거리고 아무나 찍어주지 않으며, 찍으면 아주 품위 있게 찍어준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아무나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부르주아 지식인,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귀족, 상공업자, 지체 높거나 돈 있는 권력자 부호들이 나다르 스튜디오를 찾았다. 특화된 초상사진으로 나날이 번창한 나다르는 파리 주변에 엄청나게 큰 땅과 으리으리한 집을 사서 사진의 출현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 되었다. 나다르는 사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업적들도 남겼는데, 1858년 파리시를 공중에서 촬영한 최초의 항공사진을 제작하기도 했고, 카타콤(지하공동묘지)을 촬영할 때는 인공조명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또 인터뷰 사진 스타일을 창조하였다.
참고 자료
악의 꽃에서 샤넬 No.5까지/이찬규 외
시간흔적의 얼굴영상연구 / 권상춘, 석사 :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2002
· 내면의 정신세계가 표출되는 문필가의 Portrait/ 박상희, 석사 :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