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군산 일제 수탈지를 탐방하고
- 최초 등록일
- 2006.01.03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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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 지배하에 있던 우리민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군산의
일제 수탈지와 관련된 곳을 기행하고 적은 레포트.
목차
없음
본문내용
비가 부슬거리며 내리던 하늘은 더욱 새까맣게 변해서 좀더 굵은 방울의 비를 흩뿌렸다. 굵고 가늘게 차창을 타고 탱그르르 흘러내리는 빗방울들 사이로 보이는 군산은 조용한 시골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문화제’로 처음 와 보는 군산이었다. 그동안 군산을 전주에서 통근 기차를 타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지역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문화제를 통하여 군산이 일제 식민지 지배에 따른 쌀 수탈지로 일제 지배하(下)에서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픔과 시련이 곳곳에 배어있는 역사적 현장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 찾아간 곳은 발산초등학교 유적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조그만 초등학교에서 과연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인솔자를 따라 초등학교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니 여러 가지 석등과 석탑, 그리고 조각상 등이 모여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발산초등학교 자리에 농장을 만들었던 시마타니 야소야는 일본의 야마구찌현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조업을 하여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그는 청주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1903년 12월 당시 돈 7만원으로 발산리 일대의 땅을 매입, 1909년에는 486정보의 농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시마타니 야소야의 취미는 골동품과 예술품 수집이었는데, 소작인들을 동원하여 봉림사(鳳林寺)에서 발산리 5층 석탑을 옮겨오는 등 여러 곳에서 문화재들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현재 발산초등학교 뒤편에 모여 있는 여러 문화재들은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돈 많은 일본인의 취미생활을 위해 현재 이곳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발산초등학교 유적을 통해서 제국주의 이념으로 우리 민족의 몸과 정신을 모두 빼앗으려고 했던 일제의 지배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적에도 그 영향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문화재가 함부로 이리저리 옮겨지는 것에 대하여 말 한마디 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것을 돕는 노동력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우리 민중들과 그 시대상황을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참고 자료
조정래 아리랑
조정래 태백산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