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영화]<메트로폴리스> 영화평
- 최초 등록일
- 2006.01.02
- 최종 저작일
-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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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메트로폴리스>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목차
1.미래의 이름으로 현재를 말한 영화, <메트로폴리스>
2.나찌즘을 예언한 영화?
3.폭력적 봉기 혐오한 프리츠 랑
4.철 지난 러다이트 운동의 부활,
5.왜 그들은 기계를 파괴하려 했나?”
6.약자의 관점이 ‘사회적 의미’ 있어
7.자궁선망, 여성권력에 대한 두려움
8.정치적으로 올바른’ 미래를 꿈꾼다
본문내용
자, 이제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왜 이 영화에 묘사된 노동자의 봉기는 하필이면 기계 파괴의 형태로 나타났을까? 1920년대쯤 되면 노조, 노동자 정당운동 모두 한창 활발할 때고 심지어 분파까지 일어날 정도로 문제의식의 수준도 꽤나 높아졌을 때라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몇 십 년이나 지난 ‘러다이트 운동’을 연상시키는, 이런 묘사를 사용했냐는 말이다. 나는 이것이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기술 문명에 대한 감독의 양가감정과 노사 협조의 당위성에 대한 강조이다. 기계의 속도에 자신의 속도를 맞추어야 하는 종속적인 노동자, 기계를 통제하고자 하지만 실패하는 자본가 프레더슨의 모습은, 분명 고도로 발달한 기술문명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게 될 위험에 대한 감독의 우려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심장기계가 파괴됨으로써 노동자의 도시와 자본가의 도시가 모두 위기에 처한다는 설정은, 기술문명이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는 양가적 믿음을 잘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와 노동자는 화해해야만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노동자는 (자본가가 소유하고 경영하는) 기계가 없으면 생존할 수가 없고, 마찬가지로 자본가도 (노동자가 생산하는 수단인) 기계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미 언급한 적 있듯, 대중에 의한 폭력적 노동운동에 대한 ‘혐오’이다. 당시 노동자들의 봉기가 꽤 빈번하고도 격렬하게 일어났던 탓일까, 감독은 노동자들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줄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생존에 필수적인 기계를 파괴하는 이들로, 매우 ‘어리석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애꿎은 기계를 적으로 돌리는, 좁고 피상적인 문제의식은, 이미 러다이트 운동 당시 맹렬히 비판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를 연상시키는 설정을 집어넣은 것은 노동자 대중에 의해 이뤄지는 노동운동의 수준을 폄하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이거, 상당히 엘리트주의적인 시각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