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울의 거울 정동
- 최초 등록일
- 2005.12.30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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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재 서울의 정동은 서울의 역사를 증거하고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정동의 역사와 현재를 알아본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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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울은 몸에 족쇄를 두르고 온갖 상처를 입어가며 성장기를 보낸 불행한 사람과도 같다.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몸은 부자연스럽고 상처는 남아있다. 그러나 새 살이 돋고 조금씩 세월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이제 지나간 시절의 기억들은 새로운 차원을 획득하기 시작한다. 도시의 역사를 증거하고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서울을 비추는 거울, 그 이름은 정동이다. 정동은 여러 가지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정동 교회 종소리 은은하게 울리면 ~’이란 노래가사에서도 짐작되듯이 정동은 일상 속에 존재하는 친근한 지역이다. 수많은 연인들이 ‘덕수궁 돌담길’ 대변되는 이 유서 깊은 지역을 함께 걸었고, 사랑을 속삭였으며, 그 중 상당수는 함께 이 길을 걸었던 사람과 헤어졌다. 그래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라는 현대의 신화가 하나 만들어지기도 했다.
헤어진 사람을 기억하다보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ㄷ르은 헤어질지 모르는 불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사람에게는 불행한 역사를 간직한 장소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아련하게 남아있는 아픈 기억 속에는 사람의 정서에 호소하는 그 무엇이 있다. 누구나 찾아가서 보면 찬탄을 금치 못하는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 이슬람 왕조의 운명이 경각에 달했을 때 지어진 것이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왕궁이지만 인간의 비애와 탄식 같은 것이 서려있고, 바로 그것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정동도 마찬가지다. 정동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500년 이어온 조선 왕조가 이제 막 숨을 거두려는 순간의 다급하고 절박한 상황이 정동 여기저기에 흔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덕수궁, 서울 시내에서 가장 시민들의 발길이 잦은 이 궁궐의 역사는 그리 자랑스럽지 않다.
그것은 시작부터 그러했다. 임진왜란 당시, 도성을 버리고 피난 갔던 선조 일행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황폐한 궁궐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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