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유길준의 "양절체제론"
- 최초 등록일
- 2005.12.30
- 최종 저작일
- 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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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길준과 그의 양절체제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놓은 리포트입니다.
알찬내용이 가득하니 많이 받아가세요-
목차
1.유길준은 누구인가?
2. 양절체제론이란?
3.양절체제론에 대한 간단한 정리와 나의 생각
본문내용
1856(철종7)~1914. 구한국 말기의 정치가, 개화운동가로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성무(聖武), 호는 구당(矩堂)이다. 서울 출신으로 진사 유진수(兪鎭壽)의 아들이며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이경직 등에 한학을 배웠다.
1870년 박규수의 문하에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김윤식 등 개화청년들과 실학사상을 배우는 한편 위원의 《해국도지(海國圖志)》와 같은 서적을 통하여 해외문물을 습득하였다. 1881년(고종18) 박규수의 권유로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신사유람단에 참가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유학생의 한 사람이 되었다.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유정수와 함께 수학하였다. 19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민영익의 권유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1883년 외무랑관(外務郞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한 뒤 주미 전권대사 민영익(閔泳翊)을 수행하여 도미(渡美), 보스턴대학을 다녔다.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학업을 중단하고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본 뒤 1885년 귀국하였다.
그러나 갑신정변의 주모자인 김옥균, 박영효 등과 친분관계가 있었다하여 개화당으로 몰려 체포되었다. 구금기간에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1895년에 탈고했다. 그는 이 책을 국한문혼용체로 서술하여 서양의 근대문명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한편, 한국의 실정에 맞는 자주적인 개화, 즉 실상개화를 주장하였다. 그의 개화사상은 실학의 통상개국론, 중국의 양무 및 변법론, 일본의 문명개화론, 서구의 천부인권론 및 사회계약론 등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으며, 입헌군주제도의 도입, 상공업 및 무역의 진흥, 근대적인 화폐 및 조세제도의 수립, 근대적인 교육제도의 실시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개혁론은 갑오개혁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외무참의(外務參議) 등을 지내고, 1894년 김홍집(金弘集) 내각의 내무협판(內務協辦)을 역임, 1895년 내부대신에 올라 단발령을 강행함으로써 보수적인 유림과 국민들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