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화]중국과 한국의 의식주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5.12.19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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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과 한국의 의식주 비교
목차
(1) 의생활
-한국의 의생활
-중국의 의생활
(2) 식생활
-한국의 식생활
-중국의 식생활
(3) 주생활
-한국의 주생활
-중국의 주생활
본문내용
(1) 의생활
-한국의 의생활
대륙 문화를 흡수하여 고대 국가 체제를 갖추었던 삼국 시대에는 우리 옷의 틀이 갖추어졌으며, 일부 중국 옷을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소화하기도 하였다. 중국 옷은 그 후 통일 신라, 고려, 조선에 걸쳐 주로 복식에 영향을 주었고, 서민들의 복식은 왕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옷의 기본적 형태를 그대로 지켜 왔다.
사계가 뚜렷하고 일교차가 심한 한반도의 자연환경을 고려하여 한민족의 조상들은 겨울에는 찬바람과 추위를 막아 주는 따뜻한 견직물관 모직물을 즐겨 입고, 여름에는 덥고 습윤한 기후에 견딜 수 있는 통기성과 땀을 잘 흡수하는 삼베와 모시를 즐겨 입었다. 삼국시대이후로 한민족의 남정네들은 통이 넓은 바지와 길이가 둔부까지 내려오는 저고리를 즐겨 입었으며, 부녀자들도 통이 넓은 바지와 품이 넓은 치마, 둔부까지 내려오는 저고리를 즐겨 입었다. 삼국시대의 남정네들은 머리에 깃을 꽂거나 건을 쓰거나 관을 썼고, 부녀자들은 머리를 틀어 올려 쪽을 찌고, 미혼남녀는 머리를 땋아 늘어 뜨려 장식을 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남정네들은 복두를 즐겨 쓰고, 미혼남녀는 머리를 땋아 늘어 뜨려 처녀는 빨간 댕기를 매었고, 처녀는 검은 띠를 매었다.
고려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갖고 와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부터 면화재배가 확산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 전기에 이미 목면(木棉)이 크게 유행하였다. 목면의 대량생산은 서민들의 의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 왔으며, 방한복에 솜을 집어넣어 따뜻하게 입을 수 있게 하였다. 고려말에 이르러 남정네들은 외출을 할 때 흑립과 방갓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외출할 때 성인은 상투를 쫓고 망건을 두른 후 갓을 쓰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여자들의 쪽머리가 확립된 것은 서기 1800년경이후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말 이후로 여인들의 머리장식은 개화기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전통적으로 서민들의 의생활은 여름에는 주로 삼베와 목면을 즐겨 입었고, 봄가을에는 목면을 즐겨 입었으며, 겨울에는 목면에 솜을 넣어 누빈 겹옷을 즐겨 입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