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의 변천
- 최초 등록일
- 2005.12.08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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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의 변천을 우리나라 시대순으로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A플러스 받은 레포트이고, 목차부터 참고문헌까지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참고문헌 목차까지 포함해서 11장입니다...
목차
(1) 서론
(2) 고려 시대의 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
(3) 조선 시대의 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
1) 조선의 건국과 정통성 확보로서의 단군, 기자 인식
2) 조선 중기 사림파의 단군, 기자 인식
3) 조선 후기 단군, 기자 인식
(4) 근세 이후 일제 시대의 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
1) 일제 식민 사학의 연구-단군의 부정
2) 민족사학의 대응
(5) 해방 이후의 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
1) 북한 학계의 단군, 기자 인식
2) 남한 학계의 단군, 기자 인식
(6) 결론
본문내용
평양은 초기부터 중심은 아니었으나 고조선의 중요한 지방이었다고 파악하였다. 이러한 경향이 극단화되어 나타난 것이 최근의 단군릉 발굴이다. 북한은 1993년에 평양 대박산에 있던 석실봉토분이 단군릉이라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위해 제시된 논거들의 비논리성과 비약은 논외로 하더라도, 북한은 단군릉의 실존을 말하기 위해 지금까지 그들이 정설로 해 왔던 요동 중심설을 부정하고, 평양 중심설을 채택하였다. 평양은 고조선 세 왕조 내내 중심지로 변함없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이미 평양을 고조선의 영역으로 포함시키며 그 위상에 변화를 보였던 이전시기에서부터 감지되는바 고조선-고구려-고려-북한으로 연결되는 역사계승체계의 확립 위에 현재의 지배체제를 정당화, 나아가 우상화하려는 강한 정치적 의도의 소산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해방이후부터 전개된 북한의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연구는 각 지절마다 당시의 요구를 수용하며 달라져왔다. 북한에서의 연구 결과들은 상대적으로 강한 정치적 의도들이 투영된 것이기는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한 변화자체가 아니라, 최근의 단군릉발굴에서 보여지듯이 남북한의 역사인식 자체가 크게 이질화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