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설과 대응방안
- 최초 등록일
- 2005.12.08
- 최종 저작일
-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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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나일본부설에 관한 설명과 대응방안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임나일본부설의 내용
(2) 임나일본부설의 비판근거
(3) 우리의 대응
본문내용
예로부터 우리는 과거 우리 나라를 침략했던 역사적 사실과 관련해 일본에 보이지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일본은 임나 일본부설이라는 자의적 해석에 따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것은 일본의 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문제에 이은 새로운 역사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임나일본부설의 내용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 일본부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더불어 일본의 교과서 왜곡, 일본의 주장,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1)임나일본부설의 내용
이 주장은 현재 일본의 교과서에 수록되어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편견과 우월감을 조장하고 있다. 일본의 임나일본부에 관한 연구는 이미 17세기 초에 시작되어 19세기 말에는 본격적인 문헌고증에 의해 정설로 뿌리를 내림과 동시에 각국에 소개되었다. 이를 통해 3세기경에는 외국에 식민지를 건설할 정도로 일본의 고대사회가 발전하였다는 논리로 나아갔고, 한편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하였다. 이처럼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행위를 과거로의 환원으로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일본인과 한국인은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다는 `일선동조론‘과 함께 표리관계를 이루면서 35년간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하는 관념적 버팀대로서 기능했던 것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조선의 근대화와 일본과의 관계 (후소샤 교과서 218-219쪽)
일본은 조선의 개국 후 그 근대화를 돕기 위해 군제개혁을 원조했다. 조선이 외국의 지배에 굴하지 않는 자위력 있는 근대국가가 되는 것은 일본의 안전에 있어서도 중요했다. 그런데 1882년 군제개혁에 소외당한 일부 조선 군인의 폭동이 발생했다(임오군란)
일본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증가시키려 했던 목적을 숨기고, 군사원조로 조선 의 군사력을 강화에 기여했다는 것처럼 서술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했다. 실제로도 이 일로 일본에게 많은 차관을 지게 됐고, 일본은 임오군란 종식 후 일본공사관 복구비등 많은 배상을 요구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