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이론]한국 근대조각의 흐름과 성격
- 최초 등록일
- 2005.12.04
- 최종 저작일
- 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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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근대조각의 흐름과 성격을 정리한 레포트
목차
1. 머리말
2. 일제시대의 조각
3. 해방이후부터 1960년대까지의 조각
1) 기념동상
2) 구상조각
3) 현대조각으로의 이행
4. 맺음말
본문내용
서양미술의 경우 미술에서의 혁신은 주로 화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대미술에 와서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이를 이용한 재료의 확대, 공간의 새로운 해석, 다른 장르와의 종합에서 조각가의 기여도가 훨씬 커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근·현대 조각은 수적으로도 적은 편이고 활동 영역이나 다양함에 있어서도 회화에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조각계의 빈약함은 조선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우수한 불교 조각 전통이 조선시대에 와서는 능묘나 궁전의 석물조각 등으로만 근근이 이어지게 된다.삼국시대나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우수한 불교 조각 전통이 조선시대에 와서는 능묘나 궁전의 석물조각 등으로만 근근이 이어지게 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숭유억불정책에 의하여 불교미술이 급격히 쇠퇴함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불교조각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조각은 그 조각적인 성격에서 공예적인 성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양반이나 선비의 학식과 인격을 도모하는 교양의 하나로 생각되던 문인화의 전통과 달리 조각 작업은 기술위주의 석공이나 주조공의 일로 여겨졌을 뿐, 순수한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예술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와 소개된 휴머니즘 전통에 근거한 인체위주의 서양조각들의 개념이나 취향, 제작방법 등 역시 우리의 전통조각과 매우 달라 서양화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매우 어려운 입장이었다.
우리나라 근대조각가로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사람은 김복진 김복진 (1901~1940.8.18) : 최초로 서양 조각을 한국화단에 도입하였다.1920년 배재고보를 중퇴하고 도일,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1922년 박승희·이서구·김기진 등과 연극단체인 토월회를 창립, 방학을 이용하여 고국공연을 하는 등 예술적·지적인 내면세계를 다져나갔다.
1924년 일본의 제국미술원전람회(제전)에서 작품 《나상》이 입선하였고, 1925년 조각가가 되어 귀국하여 곳곳의 학교에서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조선미술전람회(선전)를 통하여 《3년 전》(1925) 《女》(1926) 등을 발표하였다.
1928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한 죄로 투옥되었고, 옥중에서는 목조불상 제작에 전념하던 끝에 불교에 귀의하였다. 출옥 후 제2의 인생을 맞은 그는 ‘선전’에 《목》(1936) 《불상습작》(1936) 《나부》(1937) 등을 출품하였으며, 학교의 주문으로 초상조각 제작에 특히 정열을 쏟았다.
1939년 사실주의적 기법을 바탕으로 한 그의 《불상습작》을 원형으로 하여 법주사의 대불 제작에 착수하였으나, 이듬해인 1940년 선전 출품작인 《소년》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대불은 미완성인 채 요절하였다.
이다. 그 밖에 문석오, 조규봉, 윤승욱, 김경승, 김종영, 김두일, 윤효중, 이국전, 김정숙 등이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동경미술학교 출신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