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남한과 북한이 단독정부 수립하는 과정을 서술하였습니다.
발표문으로 쓸때는 적당한 15분 길이이며 내용도 알맞게 요약, 압축하여 보기 편하실것입니다. 많은 도움 되세요^^
목차
1. 대한민국의 수립
1) 남한단선의 결정
2) 5.10 선거와 대한민국의 수립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1) 북조선인민위원회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 제주 4.3사건
본문내용
남한단선의 결정
미국은 제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직후부터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었다. 결국 한국문제는 소련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엔에 상정되어 한국에 있어서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의 실시와 미·소 양군의 철수, 그리고 이를 감시하기 위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파견 등이 결정되었다.
1947년 11월 14일자 유엔총회 결의안에 따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창단되어 서울에 입경하였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초기 활동은 위원단의 활동이 전 한반도에 미치도록 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위원단은 북한 주둔 소련군 사령관과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소련은 1월 22일 유엔 소련대표 그로미코를 통해 협조 거부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고 사실상 소련의 거부는 유엔결의안 통과시점부터 예견된 것이었는데, 소련은 한국문제의 유엔 이관 자체를 반대했었고, 그 해결방안도 소련이 거부해왔던 ‘남북한 인구비례에 따른 총선’이었다. 따라서 소련은 유엔총회 결의안에 대해서 그것이 가결된다 하더라도 따르지 않을 것임을 미리 밝힌 바 있었다. 유엔총회의 결의안은 권고안에 불과하므로, 이의 실질적인 수행이 불가능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박찬표,『한국사』52, 2002, pp.389~390., 위원단이 3.8선 북쪽으로 넘어오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는 남북한에 걸친 전국적 총선의 감시라는 당초의 임무 수행이 불가능해졌음을 최종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유엔 감시하의 전국총선거란 사실상 남한 單選案이었다. 실제로 미국은 소련이 유엔의 결정을 거부할 경우 남한에서만 선거를 통해 단독정부를 수립한다는 계획을 마련해놓고 있었으며, 통과 된 이후에는 38도선 이남의 지역에서만이라도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이미 결정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에는 국내 정치세력은 물론 유엔과 유엔한국임시위원단내에서도 상당한 반발이 야기되었다. ① 위원단이 접근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하여 남한단독의 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입장 미국의 對韓政策에 우호적인 중·프·필리핀 등 - 이승만과 한민당세력과, ② 그것은 한국의 분단을 영구화시킬 것이므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그 위임받은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음을 소총회에 알리고 앞으로의 지시를 구해야 한다는 입장 영국블럭에 속한 호주·캐나다·인도 등 - 김규식 등의 중도파와 김구으로 양분되었다.
참고 자료
변태섭, 『한국사통론』, 삼영사, 1997.
박찬표, 김성보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한국사』52, 국사편찬위원회, 2002.
신병식, 「분단정부의 수립」, 『한국사』15, 한길사 , 1994
류승렬,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깊은 이야기』7, 솔, 2004.
정영국, 「정치사회의 유동성과 제헌국회 선거」, 『정부수립과 제헌국회』, 오름, 1998.
강준만, 『한국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