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민비시해사건에 관한 경복궁 답사문
- 최초 등록일
- 2005.11.30
- 최종 저작일
- 2004.11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민비시해 사건을 중심으로 경복궁을 답사하여 경복궁과 건청궁 터에 대한 답사문과 을미사변 원인과, 의의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였습니다.
여기에 제출하실 때 본인이 찍힌 사진을 첨부하시면 완벽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차
Ⅰ. 서문
- 선정이유
- 경복궁
Ⅱ. 답사 일정
- 경복궁 안내도
- 답사코스
- 답사사진
Ⅲ. 건청궁 터 답사
- 건청궁 터
- 건청궁의 역사적 배경
- 을미사변
Ⅳ. 답사를 마치며
Ⅴ. 참고문헌 및 참고사이트
본문내용
▶ 선정이유
예전에 TV에서 방영한 명성황후 사극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었다. 원래부터 명성황후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극을 본 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경복궁에 학창시절의 답사로 많이 가보았지만 그 곳이 명성황후가 시해된 현상의 우리민족의 가장 가슴 아픈 역사가 담겨있는 곳이 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 답사의 계기로 경복궁의 화려한 모습 뒤에 숨겨진 암울했던 근대의 상처를
찾아보고자 했다.
▶ 경복궁 (景福宮)
경복궁에 관해 대략적인 설명을 하자면 경복궁은 사적 제117호로 현재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정궁(正宮)에 해당하는 것으로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북궐(北闕)로도 불린다.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경복궁을 만드는 일이었다. 1394년(태조 3) 12월 4일 시작된 이 공사는 이듬해 9월 중요한 전각이 대부분 완공되었다. 궁의 이름은〈시경 詩經〉에 나오는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뜻으로 `군자만년개이경복`(君子萬年介爾 景福)에서 따왔다.
경복궁은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으나 이곳에 왕들이 머문 기간은 1405년(태종 5) 지어진 일종의 별궁인 창덕궁(昌德宮)에 비해 훨씬 짧다. 세종·문종·단종이 이곳에 주로 기거했으며, 왕자의 난으로 인한 개성천도 기간 동안 빈 궁궐이었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경복궁을 기피해 창덕궁에 기거하면서 임금이 살지 않는 궁이 되었다.
1543년(중종 38) 동궁에서 일어난 화재와 1553년(명종 8)에 일어난 내전일곽의 화재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이듬해 복구되었다. 38년 뒤 임진왜란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불탄 후 270여 년간 폐허상태로 있다가 1865년(고종 2) 대규모 재건공사가 시작되었다. 1868년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왔으나, 1876년에 일어난 대규모 화재로 다시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1888년 재차 옮기는 등 여러 차례의 피해와 복구가 거듭되었다.
참고 자료
☞ 숨겨진 한일역사 http://www.ko2ja.co.kr/
☞ 명성황후 http://www.lastempress.wo.to/
☞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의 카페 : http://cafe.daum.net/gogurea
☞ 경복궁 : http://gyeongbok.ocp.go.kr/
☞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은 밝힌다 - 2001. 지식산업사 최문형
☞ 명성황후, 최후의 8시간 - 2005. 운디네 박하상
☞ 우리궁궐이야기 - 1999. 청년사 홍순민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