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이론]한국교회사
- 최초 등록일
- 2005.11.13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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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에 교회가 들어온 때부터 현재까지를 정리했습니다.
목차
1. 개신교의 전래(1830~1884)
2. 선교실현기(1885~1904)
3. 교회부흥과 신앙유형의 정립기(1905~1910)
4. 한국교회의 수난 시작(1910~1919)
5. 사회변화와의 대결기(1919~1929)
6. 신비주의적 경건기(1930~1940)
7. 극심한 수난기(1940~1945)
8. 해방과 교회의 재건기(1945~1957)
9. 한국교회의 팽창과 자의식발전기(1958~1987)
10. 한국교회의 성숙기(1988~현재)
본문내용
한국의 개신교회는 19세기 말(1870년대 이후)에 선교사들을 통하여 들어왔다.
개신교회(프로테스탄트)의 한국전래 이전에 이미 천주교는 한 세기 앞서 18세기 말에 들어왔으며, 자발적인 전도활동과 수용을 통해 한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바 있다.
남인(南人) 계열 학자들의 학문적 호기심에 의해 시작된 서학연구는 곧 신앙행위의 실천으로 연결되었고, 천주교가 민간에 널리 퍼지면서 중인, 평민, 부녀자 등 사회적으로 불우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천주교는 나날이 성장하는 만큼 심각한 박해에 직면하게 되었다. 신해박해.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교난 등 수많은 교난을 겪으면서 신앙을 지키던 많은 천주교인들과 잠입하여 전교활동을 하던 서양인 성직자들이 순교를 당했으며,배교하여 목숨을 건지는 약삭빠른 자들도 생겨났다. 이는 전통적 양반중심 유교사회 안에서의 사상적.종교적 대립과 갈등에서 기인된 일이었으나 외세문물을 멀리하고 강력한 쇄국정책을 펴던 조선왕조의 외교자세와 국내정치의 복잡한 당쟁파급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쇄국정책은 고종 초기까지도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계속되었으나, 대원군 실각 이후 외세에 대한 문호개방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천주교전교의 자유가 주어지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천주교 전래사를 중요한 배경으로 하여 1830년대 이후 개신교회의 한국 선교활동 노력과 그 접촉이 진행되었으며, 마침내 1880년대에 이르러 제 교단의 선교실현과 그 수용이 진행되었다.
1. 개신교의 전래(1830~1884)
이 시기는 한국과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접촉하는 시기이다. 또한 조선 말 세도정치로 국정과 민생이 문란해진 시기이기도 하다.1832년 개신교 선교자로서 가장 먼저 한국을 방문한 사람은 독일출신의 선교사 귀츨라프(K. F. A. Gutzlaff, 1803~1851)였다. 그 후 수년간 조선과 개신교의 접촉이 없다가, 1866년에 영국 런던선교회 소속 선교사인 토머스(K. J. Thomas) 목사가 미국 상선을 타고 대동강에 진입했다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