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중국과 일본의 근대화운동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5.11.11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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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에서는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 일본에서는 ‘화혼양재론(和魂洋才論)’이라 부른 양국의 근대화운동을 비교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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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세기 중엽, 동아시아는 서양 세력의 영향을 받는 정세 속에 놓여 있었다.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동아시아 3국은, 마침내 상황의 타개를 위해 서구문물을 수용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논리를 한국에서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 중국에서는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 일본에서는 ‘화혼양재론(和魂洋才論)’이라 부른다. 이른바 근대화의 물결이 동아시아에서 일기 시작한 것이다.
3국은 근대화 운동을 펼쳤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 데에 반해, 중국과 한국은 실패한 것이다. 3국은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요건, ‘유교 문화권’ 등의 공통 요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화의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결과를 맞이하였다. 본 고는 중국과 일본의 근대화 운동을 비교해 봄으로써 양국의 근대화의 결과가 왜 다르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고, 일본의 성공 요인과 중국의 실패 요인을 알아보고자 한다. 나아가 일본 근대화의 성공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시해 보고자 한다.
중국의 근대화 운동
중국은 오랜 세월동안 중국이 세계질서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中華思想)’에 젖어 있었다. 17세기 말~18세기 초에 중국은 비로소 중국 이외의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으나 그 세계의 장점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인정한다 해도 그것은 본래 중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수용은 하면서도 적극적이지 못했다.
이 때 중요한 연결로의 역할을 맡았던 것이 선교사였다. 중국은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의 문화를 접하고, 중국의 문화도 서양에 전해지면서 중국과 서양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8세기 초에 중국에서 선교사의 활동이 금지됨으로써 서양과의 교류는 끊어지게 된다. 중국의 안정과 경제적 번영은 학술․문화적으로 크게 발전을 가져와 천조의식(天朝意識)과 화이관(華夷觀)이 강화되었고, 중국은 더 이상 서양사정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18세기의 서양은 급변하는 시대에 놓여있었다. 경제와 사회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체제가 구축되었으며 대외 시장을 개척하고 확보하려 하였다. 이에 해외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국제사회를 형성하고 국제법을 근간으로 국제질서가 형성되었으며, 과학과 기술혁명은 서양의 대외활동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다.
참고 자료
신승하 외, 『19세기 중국사회』, 신서원, 2000,
일어일문학과 저, 『일본으로의 초대』, 충남대학교출판부,
라이샤워, 『일본 근대화론』, 한림신서,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