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릉 보고서]선정릉에 대한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05.11.08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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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심에 있는 선정릉에 대해 총체적인 조사를 한 보고서입니다.
목차
1. 선정릉
2. 선정릉의 위치.
3. 선릉(宣陵)과 성종, 정현왕후
4. 정릉(靖陵)과 중종
4. 느낀점.
본문내용
선릉에 모셔진 성종은 추존된 덕종(德宗)의 둘째 아들로서 세조 3년(1457) 7월 30일 경복궁 동궁에서 탄생하였으며 휘(諱)는 혈이고 어머니는 추존된 소혜왕후 한씨이다. 예종 원년(1469) 11월 예종이 승하함에 경복궁에서 즉위하였으니 춘추 13세였다. 세조대왕비 윤씨(尹氏)가 성종 7년(1476)까지 수렴청정을 하였다. 성종은 압록․두만강의 건주야인(建州野人)을 정벌하여 변방을 굳건히 하고, 《경국대전》,《동국여지승람》,《동국통감》,《동문선》,《오례의》,《악학궤범》 등의 편찬을 통하여 문물제도를 정비하였고, 유교사상을 정착하여 왕도정치를 실현함으로써 조선시대 초기의 전반적인 체제를 안정시켰다. 성종 25년(1494) 12월 24일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니 재위 25년이었고 춘추 38세였다. 연산군 원년(1495) 1월 묘호(廟號)를 성종으로, 무덤의 이름을 선릉으로 하고, 이 해 4월 광주부 서면 학당동(學堂洞) 언덕에 예장(禮葬)하였다.
성종의 계비(繼妃)인 정현왕후 윤씨(1462~1530)는 본관이 파평(坡平)으로 우의정 영원부원군 윤호의 딸로서 세조 8년(1462) 6월 26일 충청도 신창현에서 탄생하였으며 어머니는 연안부부인 전씨이다. 성종 4년(1473) 6월 대궐에 들어가 연산군의 생모 윤씨가 성종 10년(1479) 폐비(廢妃)됨에 따라 그 이듬해 11월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 25년(1530) 8월 경복궁 동궁에서 춘추 69세로 승하하니 소생으로 중종이 있다. 이해 10월에 선릉 왼쪽 언덕에 예장(禮葬)하였다.
선릉은 왕릉과 왕비릉이 각각 다른 산등성이에 있는 동원이강의 형식으로, 왕릉에는 병풍석(屛風石) 12면을 세우고, 12간인 난간석 밖으로 양석(羊石)과 호석(虎石) 각 2쌍, 상석(床石) 1좌, 망주석(望柱石) 1쌍과 3면의 곡장(曲墻)으로서 윗층을 이루고, 그 한 단 아래에 문인석(文人石) 1쌍과 마석(馬石) 1쌍, 명등석(明燈石) 1좌로 중간층을 이루었으며, 아래층에는 무인석(武人石)과 마석 각 1쌍이 설치되어 있다. 왼쪽의 비릉에는 병풍석을 세우지 아니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석물은 왕릉과 같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