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문학]21세기에 만나는 동양과 서양-아도르노와 박경리 그리고 엘프리데 옐리넥-
- 최초 등록일
- 2005.11.05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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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경리와 아도르노의 작품을 통해 21세기 동서양의 문학의 교점과 차이점을 확인해본다. 현대예술로서의 문학, 언어예술로서의 문학을 살펴보며 작품에 깔려있는 동서양의 문학관을 분석했다.
참고서적)위르겐 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변동』
레싱, 함부르크 연극론
성은애, 「『토지』5부의 세대교체와 그 성과」, 토지 비평집 2, 『한, 생명 대자대비』
목차
* 부정변증법의 동아시아적 양태: 박경리의 문학관
* 구한말 한국인들의 삶에 기록된 우주적 소통가능성의 모색
-『토지』가 실현하는 아도르노의 형상화 원칙. 자연조화미Naturschöne
1. 현대 - 소통불가능의 시대
2. 현대예술로서의 문학
3. 언어예술로서의 문학
4. 『토지』 - 우주적 소통가능성에 대한 모색
근대적 분열에 대립하는 이념형으로서의 전근대 (vormodern)
5. 『피아노 치는 여자』 - 단절과 분열에 대한 메타비평
에리카, 여자 파우스트. 신화의 세계로 도피하지 않는 지성의 승리
본문내용
* 부정변증법의 동아시아적 양태: 박경리의 문학관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은 철학적 방법론으로서의 변증법을 ‘삶의 태도’의 문제로 전환시킨 경우라 할 수 있다. 개념과 객체의 일치를 추구하여 진리를 인식한다는 <철학적 관심>으로부터 개념과 객체가 일치하지 않는 (혹은 인간적 한계 때문에 개념으로 객체에 다가갈 수 없는) 세계상태 속에서 살면서도 ‘진리’에 대한 표상은 버리지 않는 <태도>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무의미한 세계에서 살면서도 삶의 의미를 확보하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의 인간학은 이러한 조건위에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아도르노는 기존 변증법의 운동과정에서 반反과 合합의 관계를 단절시켰다. 이 ‘단절’의 과정이 꼭 명쾌하게 해명된 것은 아니지만, 합의 상태가 현실에 실증적인 양태로 나타나는 것이 모든 비진리의 척도라고 할 정도로 헤겔의 진리관에는 반대한다. 아도르노의 어법에 따르자면 우리는 이미 칸트와 헤겔의 방법론과 진리관에 의지해 사유하는 세계상태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실증자 das Positive로 나타나지 않는 합으로의 운동과정을 구체적으로 표상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이 주관적인 편향을 보인다고 비판한다.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 역시 세단계의 운동과정을 설정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정/반/반으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이 반/반의 사유운동을 파악하기에 적합한 개념은 아직 없어 보인다.
한국의 작가 박경리의 문학세계에서 일부 사회과학적 인식으로 무장한 평론가들에게 요령부득으로 다가온 어떤 부분이 이 반/반의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필자의 주장은 아직 가설에 머물 뿐이다. 제대로 된 연구를 통해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경리의 문학에 대한 비판 중 민족문학론 진영 일부에서 제기해온 문제는 역설적으로 이 작가의 탁월함을 증명한다. 평자들은 민족사의 수난을 다루면서 ‘극복의 구체적 전망’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지적하기 일쑤였는데, 이때 구체적 전망이란 민족주의적이거나 사회주의적 사회발전 전망이었다. ‘민족’과 ‘사회주의’가 새로운 사회구성의 원칙으로 될 수 없음은 그동안 경험적으로도 증명되었다. 한국의 문학계는 8,90년대에 이와 같은 사회적 전망을 공유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이런 시대정신 하에서 자신의 문학관을 지켜온 작가의 안목은 남다른 바가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