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황룡사
- 최초 등록일
- 2005.11.01
- 최종 저작일
- 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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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황룡사에 관해 조사한 내용입니다.
목차
1. 황룡사의 건립배경
2. 황룡사의 건립기간
3. 황룡사의 구조
4. 장육존상
5. 황룡사 대종
6. 황룡사 9층 목탑
7. 황룡사에서 나온 유물
맺음말
본문내용
9층 목탑은 선덕여왕12(643)년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지장율사의 건의에 의하여 이룩된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당나라로 유학갔던 자장율사가 태화지란 연못을 지나는데 신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황룡사 호법룡(護法龍)은 곧 나의 장자(長子)로 범왕(梵王)의 명을 받아 그 절을 보호하고 있으니 본국에 돌아가 그 절에 9층탑을 이룩하며 이웃나라가 항복하고 구한(九韓 : 아홉 오랑캐국)이 와서 조공하여 왕업이 길이 태평할 것이요 탑을 세운 후에 팔관회를 베풀고 죄인을 구하면 왜적이 헤치지 못할 것이다.」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선덕여왕은 자장율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군신들과 이를 의논하였다. 신하들은 9층 목탑을 세우기 위해서는 백제에 공장(工匠)을 요청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는 백제의 건축기술이 앞서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선덕여왕은 귀한 물건과 비단 등을 백제 조정에 보내어 건축 기술자를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백제 건축가인 아비지(阿非知)가 와서 나무와 돌을 다루고 이간(伊干)인 김용춘이 소장 200명을 거느리고 공사의 책임자가 되었다. 처음 절의 기둥을 세우던 날 공장의 꿈에 백제가 망하는 형상을 보고 공장이 의심하여 일하던 손을 정지하자 홀연히 땅이 진동하고 어둡더니 한 노승과 한 장사가 금당문에서 나와 그 기둥을 세운 후 그들은 어디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공장은 이에 후회하고 그 탑을 완성하였다.
9층 목탑의 높이는 상륜부가 42척 상륜이하가 183척 합해서 225척(약 80미터)이었다. 탑 중심 기둥엔 사리를 안치하였다. 중심기둥의 초석 밑에서 1964년 금동탑지(塔誌)가 발견되었는데『삼국유사』의 기록과 같았다 이 9층탑은 9한을 누르기 위하여 세운 호국탑이었는데 제 1층은 일본, 제 2층은 중화(中華), 제 3층은 오월(吳越), 제 4층은 탁라(托羅), 제 5층은 응유(應遊), 제 6층은 말갈, 제 7층은 단국(丹國), 제 8층은 여적(女狄), 제 9층은 예맥(濊貊)을 제압하는 상징이다. 신라는 이 9층탑을 세운지 23년 후인 668년에 삼국을 통일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