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신라 삼국통일 전후의 사회
- 최초 등록일
- 2005.10.31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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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라 삼국통일 전후의 사회입니다. 직접 쓴글입니다. 이 레폿으로 레폿점수 만점맞았습니다.
목차
Ⅰ.신라하대 지방사회
(1)신라하대의 사회 상황
(2)정치적 사회적 사상적 동향
Ⅱ.농민의 봉기
(1)농민 항쟁의 배경
(2)농민항쟁의 전개 과정
(3)농민항쟁의 의의
Ⅲ.6두품세력의 대두와 사회개혁
(1)나말 6두품 세력의 대두
(2)나말 호족세력의 동향
Ⅳ.후삼국의 성립
(1)후삼국의 성립 배경
(2)후삼국의 통일
본문내용
Ⅰ.신라하대 지방사회
1)신라하대의 사회 상황
신라는 하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정치적 혼란과 함께 경제적 혼란까지 겹쳐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는 귀족들의 왕위 쟁탈전이 끊이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는 귀족들의 대토지 소유로 말미암아 일반 농민들은 극심한 생활의 궁핍을 겪고 있었다.
진성여왕대를 전후로 하여 왕위 계승다툼은 극심한 경향을 보였다. 귀족내부에서의 갈등과 대립으로 정치적 혼란은 더욱 가속화 되었고, 더구나 이러한 귀족들의 자체 분열뿐만 아니라 왕이나 귀족들의 생활은 사치스럽고 방탕하여, 신라의 멸망을 재촉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진성여왕대를 이후로 군사력은 크게 약화되어 있었고,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제압할 힘조차 없었다. 더구나 효공왕대 이후 朴氏王의 출현과 그로 말미암은 진골 김씨세력과의 대립, 견훤세력에 의한 김씨왕의 재출현 등. 복잡한 정치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왕과 귀족들은 백성들 위에 군립하려고만 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은 지배계급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차게 되어 반 사회세력화되게 된다.
신라시대 토지제도 내에서 녹읍은 귀족관리들에게 녹봉으로 지방의 지정된 읍에서 직접 조세를 거둘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제도였다. 이때 대부분의 귀족관리들은 자신의 가신들을 시켜 수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녹읍제 하에서 녹읍민은 녹읍주에게 조세를 납부하는 동시에 국가에 요역을 부담하고 공부(貢賦)를 바치는, 국가와 녹읍주에게 이중지배를 당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때 국가는 지방 관리들을 통해 녹읍주들의 지배 행위를 통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신라 하대 경덕왕대에 녹읍이 부활하면서, 이들 지방관리들은 녹읍주와 결탁하거나 현실적으로 그들의 지배를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녹읍제 내에서의 불법, 탈법 행위가 공공연히 행해지게 되고, 지방관리들 또한 여기에 가담하게 된다. 여기서 나타난 현상이 바로 귀족들의 대토지 소유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