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치사]현대중국정치의 특징(파벌주의 사례연구)
- 최초 등록일
- 2005.10.30
- 최종 저작일
- 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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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중국정치론이라는 수업을 들을때 작성한 글입니다. 현대중국정치사의 특징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등소평에서 강택민 시대까지의 파벌주의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살펴보았습니다.
목차
1. 중국공산당의 파벌정치
2. 파벌과 파발정치의 특징
3. 중국정치와 상해 인맥
4. 문화혁명과 상해 인맥의 진출
5. 권력투쟁과 상해 인맥의 몰락
6. 등소평 시대의 상해와 상해인맥의 재구성
7. 강택민 총서기의 등장과 새로운 상해 인맥의 형성
8. 강택민 상해 인맥의 장래
본문내용
권력엘리트 내부의 동질성과 합의에 입각한 정책결정의 패턴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파괴되었다. 따라서 문화혁명 이후 파벌간의 갈등은 권력투쟁과 정책논쟁, 그리고 노선투쟁이 복합적으로 증폭되는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기존의 권력 엘리트와 이질적인 상해인맥이 어떻게 중국정치의 중앙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약진운동 이후, 특히 1960년대 초에 중국의 지도부 내부에서 전개되었던 ‘숨은 노선투쟁’을 언급해야 한다. 즉,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당내외에서 모택동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고, 모택동의 좌경적 노선과 정책에 대한 수정작업이 추진되면서 ,당내의 실권파들은 암암리에 모택동의 계급투쟁론과 계속혁명론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이 활발해지자 강천과 모택동은 ‘수정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북경 시당위원회를 중심으로하는 기존의 문화사상 분야는 이에 순응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모택동과 강청은 상해의 지식인들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강청이 상해를 선택한 것은 가경시가 모택동과 친숙한 관계에 있는 혁명동지였고 강청 자신도 1930년대에 상해지역에서 좌익운동에 종사하면서 당시의 좌파 문인들과도 인적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론된다. 따라서 강청, 장춘교, 요문원은 약 7,8개월간 비밀리에 오함의 <해서파관>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준비해서 상해의 《인민일보》를 통하여 발표하였다. 그러나 팽진이나 중앙의 당선전부는 이러한 행동을 저지하려고 했다. 이에 모택동은1966년 5월에 정치국 확대회의를 개최하고 문화대혁명의 강력적 문건인 “5․16통지”를 통과시키고, 정치국 상무위원회 산하에 새롭게 진백달을 조장으로 하고, 강청은 제1부장으로 하는 중앙문화혁명소조를 구성, 본격적인 문화대혁명을 추진하게 하였다. 이처럼 강청을 매개로 모택동과 연계하여 문화혁명을 주도하기 시작한 장춘교와 요문원 등 상해인맥은 주로 언론과 사상 분야에서 맹렬하게 당권파를 공격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