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평론]윤동주 평론
- 최초 등록일
- 2005.10.30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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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인 윤동주에 대한 평론
목차
죄책감을 지니고 살았던 윤동주
본문내용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교육자로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외삼촌 김약연이 설립한 규암서숙을 발전시킨 명동소학교에 입학하였고 22세가 되던 1935년에 연희전문대학 문과에 입학한다. 1941년 12월 27일 졸업 후 그는 19편으로 구성된 자선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졸업 기념으로 출간하려 하였으나 미간 되었고 곧 도일을 준비하여 성씨를 히라누마로 창씨하고 다음해인 1942년 도쿄의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2일에는 교토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편입하였다. 다음해 7월 학기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던 중 사상범으로 일본에서 체포되어 큐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결국 1945년 2월 16일 대한의 광복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기에 싸늘한 감옥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죽음을 맞이했던 윤동주이기에 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가 일제에 대항했던 저항시인 이였다고 생각하고 나 또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집안이 외가 쪽으로 독립운동가가 있었던 집안이었기에, 그가 다녔던 소학교가 독립운동가에 의해 설립된 학교였기에 그러한 영향을 받은 윤동주가 일제에 대항했던 순수서정저항시인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특히 그의 대표적인 詩作인 <서시>에 표현되어 있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구절에서 예전의 나는 그가 느꼈던 일제라는 시대에 대한 한탄과 괴로움이 표현되어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새로이 윤동주를 알아가면서 그를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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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