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역사]동학농민운동에 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5.10.21
- 최종 저작일
- 2005.09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동학농민운동의 원인과 배경을 보고, 전개 과정을 살펴본 뒤 결론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았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동학농민운동의 발생 배경
1. 농민봉기의 원인
2. 동학의 등장
Ⅲ.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1. 1차 봉기
2. 2차 봉기
Ⅳ. 결론
본문내용
농민봉기의 원인은 크게 4가지의 이유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농민층의 분화와 조세수취제도의 모순과 문란, 정치세력의 부패, 열강세력의 경제적 침탈이 그것이다.
18세기를 넘어서면서 조선에는 이앙법이라는 새로운 농사기술이 도입되면서 커다란 경제적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농사기술의 도입으로 농업생산량은 크게 증대되었고 이것은 잉여생산물의 증가로 이어졌다. 한편 이 같은 생산량의 증대는 상품화폐경제를 발달시키면서 상업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또한 이앙법의 보급은 광작이라는 새로운 농업형태를 만들어내어 대지주들이 속속 출현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경제상황으로 말미암아 소수의 대지주와 상인에게 토지와 부가 더욱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고 반대로 대다수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토지를 상실하고 빈농으로 전락하게 되어 농민층의 분화를 촉진시켰다.
당시 18세기를 지배하고 있던 세금제도는 전정, 군정, 환곡 이라는 삼정체제로써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세도정치기에 들어가면서 점차 그 모순점을 드러내며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토지세를 말하는 전정은 정작 토지소유주인 지주가 아닌 직접생산자인 소작인들에게 집중되어 부과되었고, 양반계층이 면제대상 이었던 군정 또한 농민들에게 집중되었다. 또한 춘궁기 빈민구제책이었던 환곡도 그것이 국가고리대의 성격으로 변질되면서 농민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게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세금을 직접적으로 거두었던 수령과 아전들은 삼정을 이유로 자의적인 수탈을 감행함으로써 농민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이러한 삼정의 문란을 가져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를 지배하고 있던 정치세력의 부패일 것이다. 19세기 초 본격적인 세도정치기에 들어오면서 왕실과 연결된 소수의 몇몇 집안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기형적인 정치형태를 만들어 내었고 이러한 파행적인 정치는 국가재정을 위기에 이르게 하였다. 이러한 국가재정의 회복을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이러한 세금의 가중은 곧 민중들에게로 집중되게 되었고 그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게 되었다. 또한 당시에 시작된 제국주의의 경제적인 수탈은 농민들의 부담을 극한으로까지 가중시켰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