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분야]한국 철강산업의 발달
- 최초 등록일
- 2005.10.01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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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철강산업의 전반적인 발전 과정으 설명하였습니다.
과거 철강산업의 발달과정, 최근 상황, 미래의 대처방안등
3단계로 나눠져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우리나라의 철강산업의 역사는 1918년 일제에 의해 설립된 겸이포 제철소가 그 효시이며, 그 후 1940년을 전후로 흥남제철소, 조선이연 인천공장, 삼화제철소 등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들 제철소는 모두 일본이 군수용 목적으로 선철 중심의 소재생산을 위한 것이며 국내에서 필요한 가공품들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였다.
해방이후 철광석 광산과 제철공장은 대부분 북한에 편입되고 남한에 위치한 일부 공장들마저 원료부족과 사회 혼란 등으로 가동을 못하였으며, 그나마 한국전쟁 중에 시설이 파괴되어 철강산업 기반은 거의 붕괴되고 한국동란 이후 1956년 인천중공업이, 1964년 대한중공업이 각각 평로에 의한 조강 생산을 시작하고, 1957년에는 삼화제철소가 소형용광로에서 선철 생산을 시작하는 등 점차 철강산업이 정비되었으나, 이 시기까지 우리나라의 철강산업은 고철처리 또는 단순압연에 의한 제품 생산수준에 불과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정권시절, 정부주도에 의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제1차 및 2차 기간에 수출 지향적 공업화의 적극적 추진으로 경제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철강재 수요는 크게 증가하는 반면, 공급은 이에 미치지 못하여 수급불균형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대형 제철소를 짓기로 결정한 것은 1966년 미국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미국의 피츠버그 철강단지를 방문하여 코퍼스사의 포이 회장을 만났다. 당시 코퍼스사의 포이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제철소 건립에 깊은 관심을 보이자 자신도 한국의 제철소 건립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포이 회장은 제철소를 짓기 위해서는 국제제철차관단을 만들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당시의 국내 자금만으로는 제철소를 짓는 것이 역부족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제안에 따라 유럽과 미국의 각국 정부는 1966년 12월 11일 이른바 KISA(대한국제제철차관단)를 발족했다. 당시 여기에 참여했던 회사는 미국의 코퍼스사, 블로녹스, 웨스팅하우스 등 3개사와 독일의 데마그, 지멘수 등 2개사, 영국의 웰먼, 이탈리아의 임피안티사 등 총 7개사였다. 이들은 그해 12월, 회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한국의 종합제철사업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참고 자료
1. 탁승문․나병철, 「뉴밀레니엄 철강산업의 도전과 기회」, POSRI, 2000
2. 나병철, 「철강산업 전략적 제휴의 유형분석과 한국 철강 산업에의 시사점」, POSRI, 2001
3. 홍하상, 「주식회사 대한민국 CEO 박정희」, 국일미디어, 2005
4. 공병호, 「10년 후, 세계」, 해냄,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