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조선시대의 교육
- 최초 등록일
- 2005.09.30
- 최종 저작일
-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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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직 과목 들으시는 분들께 도움 될거예요~
목차
서 론
본 론
<조선시대의 서민교육>
<양반중심의 교육>
<조선시대의 교육사상가>
결 론
본문내용
조선은 창건 초부터 고려 말에 극심하였던 불교의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배불숭유를 지도이념으로 삼았다. 초기에 민심을 통일하는 수단으로 공자·맹자의 충효를 근본으로 하는 삼강오륜 사상을 적극 장려한 결과 유학이 널리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중종 때 조광조 등이 실천유학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조선시대 유학의 주류는 성리학파의 이론유학이었다. 인종·선조 시대에 그 절정에 달했던 성리학파의 교육사상이 조선시대를 통하여 주류를 이루었다.
교육제도는 고려시대의 제도를 답습하여, 서울에 성균관과 4학이 있었고, 지방에는 향교, 민간교육기관으로는 서원과 서당이 있었다. 성균관은 태조 7년(1398년)에 건립한 국립 최고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유학이념에 입각한 학술의 연마와 국가 관리 양성을 주목적으로 하였다. 4학은 고려의 학당이 계승된 것으로, 서울에 설치된 성균관의 부속학교와 같은 성격을 지닌 중등 교육기관 이었다. 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지방에서 장려되던 중등 교육기관이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4학과 교육수준은 비슷했으나, 4학이 순수한 교육기관이었음에 비해 향교는 교육과 성현에 대한 제사를 겸한 기관이었다는 점이 다르다. 서원은 중등 정도의 사립 교육기관으로 서원의 주목적은 선현에 대한 제사와 유학교육 그리고 과거준비에 있었다. 서당은 고려시대에도 매우 발전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여 그 수로 보더라도 가장 많고 생명력도 가장 긴 초등교육기관이었다. 평민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서민들의 교육 활성화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조선시대는 관료제도가 발달되고 양반의 수도 증가해 교육의 필요성이 확대되어 관학과 더불어 사학도 발전했다. 과거제도가 고려시대보다 더 뿌리를 내리게 되어 이 제도의 활용으로 인재발굴과 교육진흥을 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입신양명의 도구가 되어 도리어 정상적인 학문의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한글의 창제로 일반 서민과 부녀자들의 교육기회가 확대되고, 진정한 민족교육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