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학] 적지와 왕국 中 요나
- 최초 등록일
- 2005.09.21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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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까뮈가 요나에서 말하고 싶은 이미지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은 빛의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요나의 아파트는 <상당한 용적의 공기>를 장점으로 가진다. 유난히 천장이 높고 웅장한 창문들>을 통해 빛을 하염없이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천장은 정말 기막히게 높고 방들인 비좁은 관계로 이 아파트는 거의 전부가 유리로 이루어지고 모두가 문과 창으로만 된 수많은 평행 육면체의 기묘한 집합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빛이 사물을 어느 각도로 비추느냐에 따라 거대한 돌덩어리도 점으로 표현될 수 있다. 요나는 <거울 같은 방이군>하며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족스러워 한다. 그의 소설 속 단어는 그 자체로 살아있단 느낌의 묘사가 많았다. 그 단어들을 곱씹으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는 느낌이랄까? 현실을 솔직하게 담으며 어떻게 보면 퇴색된 사람들의 감수성을 회복시키려 했다. 마치 상징주의화가 모네가 빛을 도입함으로써 자연스런 인간의 모습을 그리 듯이 말이다. 모네의 그림과 같이 가볍고 투명한 빛과 색채의 환희 그리고 그 속에서 떠다니듯 묘사된 사물들과 생명, 그 사물을 닮아 있는 사람들과 밝은 대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사물의 포착을 중시 한 듯 하다. 또한 순수한 눈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들 중의 중앙에 있었다. 그는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현실의 맨 중앙에서 현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친 것은 모자른 것보다 못하다. 지나친 빛은 <이 속에서 가구는 어디 한 군데 기댈 곳을 찾지 못하고, 사람들은 희고 세찬 빛 속에서 미아가 된 채 수직의 수족관 속에서 잠수인형처럼 떠다니는 듯이 보였다.> 까뮈는 violente란 단어하나로 이러한 모습을 잘 그려냈다. 지나치게 많은 빛은 모든 것을 하얗게 하기 때문에 대상이 가진 고유한 자질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요나가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그림을 그릴 시간과 화가로서의 숙명의 경계가 흐믈거리 듯이 말이다.
빛을 잃어버린 그는 <공허해 보이는 이 시기가 지나면 훨씬 더 좋은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었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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