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사 최대의 미스터리 진시황제
- 최초 등록일
- 2005.09.09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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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황제를 마중 나간 동방의 두 사람
진왕 정은 전국시대였던 기원전 211년, 동방의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고대제국을 수립한 후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이었던 진은 중앙집권 지배체제를 정비하지 못한 탓에 15년 만에 멸망하고 만다. 진나라가 멸망한 후 초의 항우와 한의 유방의 싸움이 시작되고 결국 유방이 한 제국을 건설하게된다.
시황제는 황제시절 수도를 떠나 전국을 순행했었는데 이때에 초의 항우와 한의 유방을 만난 적이 있다는 전설이 『사기』에 남아 전해지고 있다.
목차
1.시황제의 통일사업
1)시황제의 얼굴
2)진제국을 지탱한 사상
3)통일제국, 제도를 통일하다
2.황제, 천하를 순행하다
본문내용
-시황제를 마중 나간 동방의 두 사람
진왕 정은 전국시대였던 기원전 211년, 동방의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고대제국을 수립한 후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이었던 진은 중앙집권 지배체제를 정비하지 못한 탓에 15년 만에 멸망하고 만다. 진나라가 멸망한 후 초의 항우와 한의 유방의 싸움이 시작되고 결국 유방이 한 제국을 건설하게된다.
시황제는 황제시절 수도를 떠나 전국을 순행했었는데 이때에 초의 항우와 한의 유방을 만난 적이 있다는 전설이 『사기』에 남아 전해지고 있다.
위의 세 사람이 다스리던 진.초.한은 각기 다른 정치체제를 취한다. 진왕 정은 ‘시황제’가 되어 군현제 위에 군림하려 하였고, 항우는 명목적인 황제가 되어 자신의 아래에 여러 왕을 영합을 도모하였다. 그리고 유방은 양자의 중간인 군국제를 선택하여 나라를 다스렸다.『사기』에 서술된 시황제 시대는 시간이 흐른 뒤 한 대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므로 이것은 진나라와 초나라를 계승한 한나라의 입장을 보여준다.
-황제라 불리기까지
천하를 통일한 해에 ‘황제’라는 칭호가 처음 사용되었는데, ‘황제’라는 칭호가 나오게 된 과정은 「시황제본기」에 자세하게 기술되어있다.
진왕은 승상. 어대사부, 정위 등에게 왕의 칭호를 바꾸어 ‘제호’의 좋고 나쁨을 논의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여기서 진왕은 이미 ‘제’라는 칭호를 염두 했음을 알 수 있다.
신하들은 진왕의 공적이 치세를 초월하는 것이므로 오제를 초월한 칭호를 찾고자 하였다. 이들은 천황, 지황, 태황을 제안하면서 이중에서 가장 높은 존재인 ‘태황’을 추천하였다.
그러나 진왕은 이를 거부하고 태황의 황과 제를 합하여 황제로 하였다.
시황제가 살아있었던 때 ‘왕’에서 ‘황제’로 개칭하였던 것은 동시대 사료인 각석이나 도량형기 죽간에도 나타난다. 하지만 이미 황천상제라는 존호가 있었고 황제는 이의 생략형이므로 새롭게 고안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고대 중국의 천 사상이 황제 칭호에 영향을 주었는데 시황제릉의 지하궁전 천정도 천체를 묘사하였다고 한다. 천제로부터 지상의 통치자인 황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