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업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5.09.07
- 최종 저작일
-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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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들어가며
2.본문
1) 현대의 설립
2) 현대의 성장과정
3) 현대의 2000년 이전 기업운영 체제
4) 현대의 국가 발전기여에 대해
5) 현대의 경영전략에 대해
3.맺으며
본문내용
정주영은 1947년 현대그룹의 모태가 된 현대토건사를 설립하고 이어 현대건설 및 현대자동차를 설립하였으며 1973년에는 한국 중화학공업의 기반이 된 현대중공업 설립하여 경제개발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계기로 박정희 전대통령과 급속히 가까워진 그는 박대통령이 재임시 가장 신뢰한 기업인 중 한사람이었으며 정주영에게 박대통령은 조선, 중공업, 자동차 등 신규사업 진출때 금융, 세제상의 지원을 아끼지 않은 든든한 후원세력이었다.
1977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었을 때 일반여론과 정부는 기업공개를 강력하게 요구하였으나 정주영은 기업공개를 하게 되면 이윤은 일부 가진 자들에게 돌아가게 되고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큰 뜻을 이루기 어렵게 되기 때문에 이 점을 감안 1977년 7월 창사 30주년을 맞아 '峨山社會福祉財團'을 만들었다.
80년대 들어서 88서울올림픽유치 민간추진위원회 위원장(바덴바덴 IOC총회)에 선임되고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는 등 국내 및 국제사회에서의 인간 '정주영'의 위상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87년에는 40년간 현대그룹을 이끌었던 정주영회장은 자동차로 북미시장을 성공리에 개척하고 강한 진취력과 합리적인 정신을 조화시켜 나가는 능력을 인정한 鄭世永 현대자동차회장에게 그룹을 승계하고 본인은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
90년대를 맞으면서 북한을 방문하여 금강산 공동개발을 제의하고 차례로 소련, 중국을 방문하여 북방경제 협력의 시대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6공들어 정주영명예회장은 정부에 대해 잇단 '소신발언'으로 소원해지기 시작했으며 국민당 창당과 대선출마로 정권과의 대결은 참담한 후유증 만을 남긴 채 대선에서 패배한 鄭명예회장은 선거후 국민당을 해체하고 경영일선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고령에도 불구 쉴새없이 무슨 일인가를 해야만 하는 성격의 鄭명예회장은 그냥 앉아만 있지 않고 전과는 또다른 차원과 기법으로 그룹경영을 이끌었다. 1995년말 최고경영진의 연령층을 대폭 낮추고 경영의 새 바람과 활력을 찾고자 '깨끗한 기업, 세계 1등 기업'이란 캐치프레이즈 아래 적극적인 경영에 나서 창업 2세 경영체제를 구축함으로써 50년 국내 재계사에 2세 경영시대의 본격 개막이라는 큰 획을 그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