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참전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05.09.07
- 최종 저작일
- 2005.09
- 1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서론
1)베트남 참전의 의미
2.본론
1)베트남 파병의 원인
2)베트남 파병이 경제에 미친 영향
3)한국의 베트남 참전 결과
3.결론
본문내용
인도차이나 분쟁 참여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한국전쟁 직후, 제 1공화국 시기에 시작되었다. 1950년 이후 미국이 엄청난 양의 재정적 물질적 원조를 통해 베트남에서 프랑스를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1954년 초 디엔 비엔 푸에서의 패배를 계기로 프랑스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자 미국은 직접 참전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다. 1954년경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 월남, 대만 3개국과 '아시아 반공연맹'을 창설하였으며, 이 시기에 이승만 대통령은 월남에 한국군 1개 사단을 파견 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고 한다. 이 제의는 미국정부가 반대하고 또 베트남에서 전쟁을 수행하던 프랑스가 일축함으로써 진전되지 않았다.
1964년 5월 초 미국은 직접개입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전문을 전세계 25개의 우방국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1962년 군사고문단 파견이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온 미국의 베트남戰에 대한 군사개입은 NATO회원국들과 일본 등 전통적인 우방국들로부터 별다른 지지를 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두 초강대국 사이에서 외교적인 저울질을 해오던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도 미국의 정책에 완전히 반기를 들기 시작함으로써 미국의 외교적 고립은 더욱 심화되어 갔다. 적극적으로 미국의 개입을 지원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SEATO는 회원국인 프랑스와 파키스탄의 지속적인 반미정책으로 인해 1964년 말 미국이 전면적인 군사개입을 시작할 때는 협조를 요청할 대상에서조차 제외되었다. 미국의 지원요청에 대한 우방국들의 반응은 미국의 당초 기대에 매우 미흡했다. 유럽이나 남미국가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은 미국도 인정했듯이 지리적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장애가 있었다. 또한 국방력이나 경제력, 그리고 미국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고려할 때 적극적인 협조가 기대됐던 영국, 캐나다, 일본 등은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자국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우려하여 상징적이고 언어적인 지지표현 외의 직접지원에는 상당히 미온적 태도를 취했다.
SEATO와 ANZUS 회원국들을 제외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 국가들 중 대만과 한국만이 미국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던 국가들이다.
참고 자료
http://opendic.naver.com/100/entry.php?entry_id=104836
http://mahan.wonkwang.ac.kr/nonmun/04/1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