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비잔틴제국과 동서분열에 대해서 조사한 자료입니다. 좋은 자료로 활용하세요.
목차
Ⅰ. 머리말
Ⅱ. 동서교회분열의 기초가 된 동·서로마 분열
Ⅲ. 교회를 정치에 귀속시킨 종교회의의 전개
Ⅳ. 동·서방의 문화·정치적 갈등 심화와 그에 따른 교회 분열
1. 성상파괴 운동과 동·서방의 갈등
2. 십자군 전쟁을 둘러싼 동·서방의 갈등
Ⅴ. 비잔틴제국의 멸망과 이후 그리스정교의 정착
Ⅵ. 맺음말
본문내용
로마제국은 3세기 특히 235~285년에 걸쳐 내외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다. 내적으로는 권력의 불안정, 시민전쟁, 경제위기와 무정부상태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외적으로는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경쟁관계에다 게르만족의 침입까지 겹쳐 일어났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서기 285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동로마와 서로마를 분리시키고 제국의 서쪽 부분을 동료 장군이자 친구인 막시미아누스에게 맡겼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이러한 제국 분할은 그가 지배하는 제국의 동쪽 부분을 보다 중요한 곳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국 초기부터 동로마 지역은 서로마 지역보다 세입이 많았고, 2세기부터 동쪽 군대의 규모가 서쪽보다 더 컸다. 이전까지 로마와 이탈리아의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여전히 서쪽이 제국 내에서 우위에 서 있었지만, 로마의 내외적 위기 앞에서는 군대와 그들에게 보수를 지불하는 데 필요한 재원이 우선순위일 수밖에 없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시도된 지방 행정의 개혁은 이탈리아 중심의 행정체제에 종지부를 찍는 것으로서, 이때부터 모든 지방들은 황제에게 복속되었으며 특권을 부여받은 이탈리아 반도도 다른 지방과 같이 둘로 나누어지고 세금을 내게 되었다.
하지만 기존의 특권과 명성을 잃어가는 서로마 지역과 군사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부상하는 동로마 지역간의 경쟁과 마찰은 예정된 일이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훌륭한 통치로 로마가 안정을 찾아가던 시기에는 이런 마찰이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후 이러한 경쟁적 지역주의는 동로마와 서로마와 반목과 분열에 지속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사후 동로마와 서로마의 후계자들의 권력다툼이 계속되면서, 이러한 동·서 로마의 분열과 혼란을 틈타 비시고트 족, 훈 족 등 이민족이 침입해 들어왔다. 324년 동방의 정제(正帝) 리키니우스를 물리치고 동·서 로마를 병합한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1세는 이러한 분열과 외우를 극복하기 위해 사상적 통합과 천도라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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