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영 일반] 경주최부자집 독서요약/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05.08.06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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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두
1)Nobless Oblige
2)대한민국 지도층,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의무
3)대한민국에도 존경할만한 부자가 있다.
2.본론
1)과거 부자의 척도 : 천석꾼, 만석꾼
2)정무공 최진립 장군 - 최부자의 가문을 일으키다.
3)경영 철학의 역할을 한 가거십훈
4)300년 만석꾼 집안의 구체적 상황 대처법, 육연
5)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6)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하라.
7)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8)스스로 초연하게 처신하라 : 자처초연(自處超然)
9)남에게 부드럽고 온화하게 대하라 : 대인애연(對人靄然)
10)일이 있을 때는 과단성 있게 하라 : 유사감연(有事敢然)
11)한국적 인간관계에 바탕을 둔 노사 관계를 실천한다.
12)함께 일하고 일한만큼 가져간다.
13)때를 가려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린다.
14)2등을 위해 1등 만큼 노력한다.
15)가치있는 일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기쁘게 버린다.
16)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를 다한다.
17)가정을 잘 다스린다.
18)형제 사이에는 우애가 있다.
19)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다.
3.결론
1)맺음말
본문내용
▲ 과거 부자의 척도 : 천석꾼, 만석꾼
경주 최 부잣집은 언제부터 만석의 부를 가지게 되었는 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경주 최씨 선대의 행장에서 보면 마지막 최 부자인 최준의 9대조인 최국선때부터 부가 정착된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10대 만석꾼으로 보는 것이 비교적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숫자에 둔감하였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숫자로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유교적 관점에서는 소인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 단위 정도에서 부자다 싶으면 천석꾼이라 칭했고, 도 단위 내에서 손꼽히는 부자다 싶으면 만석꾼이라고 불렸다. 이들은 천석, 만석의 쌀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소작료 수입이 천석, 만석 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석꾼이라면 만석의 소작료를 받는 사람이고, 만석의 소작료를 받으려면 소작인과 반 가름을 할 경우 최소한 2만석을 생산하는 규모를 말한다. 결국 만석꾼은 약 300만 평의 논밭을 가진 엄청난 부자임을 알 수 있다.
경주 최 부자의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정무공 최진립 장군이다. 경주 최씨 사성공파는 조선 초 성균관 사성을 지낸 최에를 파시조로 하여 그 후 6대손인 정무공 최진립 때 다시 갈라져 사성공파 중 가암파로 분파되었다. 최진립은 어려서부터 예의 법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스물 다섯 살이 되던 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2만여 왜군이 경주를 향해 올라왔다. 이때 최진립은 자신의 집에 머물러 있는 왜군을 불태워 죽이고 조총과 창, 칼 등 노획한 무기를 관가에 바쳤다. 그러나 머지않아 경주성이 함락되고 이에 최진립은 동생과 함께 판관의 박의장을 따라 무명으로 종군하고 무인 김호, 주사호, 최신립 등과 함께 의병 수천명을 모아 경주성 탈환에 성공했다. 갑오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부장벼슬을 받았으나 병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 후에도 여러 전투에 종군했다. 정미년에 도총부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마량첨사에 임명되었으며, 신해년에 경상좌도 우후에 제수되었고, 갑인년에는 함경도 경원부사에 제수되어 통청대부에 올랐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