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영화)
- 최초 등록일
- 2005.07.15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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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진행속도에 맞게 영화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조금은 벅찬 영화였다. 하지만 맥머피와 병동 내의 다른 환자들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인지, 어떤 반응과 변화를 보일 것인지 기대를 하며 보았고, 침이 마르게 냉랭한 정신병동의 속내를 들여다보며 심리치료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며 보게 되었다.
범죄자인 맥머피가 엄격하고 갑갑한 교도소 대신 선택한 정신병원은 어찌 보면 감옥보다도 자유가 제한된 곳처럼 보인다. 아니, 확실히 그렇다. 적어도 교도소에서는 개인의 생각과 감정, 가치관을 무조건적으로 억제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도덕적이지 못한 부분에 대해 관여하고 교육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 병동의 생활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든 자유를 박탈당하고 짓눌려 지내고 있다. 조금의 변화도 인정하려 하지 않고, 토론시간은 병원 측 방침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소비하는, 자신의 방법이 최선의 치료방법이라고 믿는 레취드(간호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물론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니만큼 그에 맞는 생활환경을 제시하고,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필요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치료자들이 관여해야 할 범위를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작은 예로 레취드가 환자들이 스포츠 프로그램 보는 것을 금지하는 장면이 이를 말해준다. 스포츠 관람으로 인해 심한 공격성이 발생하는 환자라면 합당한 그 이유를 들어 금지한다고 하지만, 모든 환자들에게 스포츠를 보며 감정을 발산하고 스트레스를 풀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권력 남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병원 측의 압력에 짓눌려서 치료가 효과적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삶의 의욕을 감퇴시키고 스스로를 더 아둔하고 살아갈 힘이 없는 무력한 존재로 만들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정신병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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