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고고학, 신학] 고대 근동 가나안 종교와 이스라엘
- 최초 등록일
- 2005.06.22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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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감사합니다.
목차
-머리말
-가나안의 한계
-가나안의 문화
-우가릿과 가나안의 종교
-가나안의 신들
-가나안 예배와 종교적 생활
-결어
본문내용
1. 가나안의 한계
이스라엘은 주전 12세기 초에 팔레스타인 정착하였을 것이다. 이 때의 가나안의 역사, 문화 종교에 대한 자료는 1930년 이후 더욱 증가되었다. 가나안 지역의 지리적 범위는 좁게는 이스라엘이 정복해 들어간 요르단 강 서편 지역을 의미하며, 넓은 의미의 가나안은 시리아 지역을 포함한 영역이다. 가나안이라는 지명은 원래 무역을 주업으로 삼던 해안의 낮은 지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조개에서 추출해 내는 자색 물감은 이 지방의 특산물이었다. 이 물감을 팔던 페니키아의 상인들을 이집트인은 펜후, 그리스인들은 페닉스라고 불렀다. 후대로 오면서 가나안이라는 고유명사는 남부의 고장과 성읍 국가들을 포괄하는 지명이 되었다.
성경은 보통 이스라엘 시대 이전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가나안인 또는 아모리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성경이 사용하는 이 두 가지 이름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 여기서 가나안인은 서부 팔레스타인, 베니게의 대부분, 남부 수리아를 포괄하는 지방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서부 셈족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을 것이다. 한편 아모리족이라는 말은 ‘서부인’을 뜻하는 아카드어로서 족장 시대와 이 전에 상부 메소포타미아와 수리아의 서북 셈족계의 여러 민족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사용되었으며, 바로 이 민족들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나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초기 청동기 시대 말기에 팔레스타인으로 침투해 들어와서 유랑하다가 특히 산악의 오지에 정착한 이들 유목민들이 바로 아모리족이었던 것이다. 아모리족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시대에 이미 그 땅에 존재하고 있으면서 가나안의 언어, 사회 조직, 문화에 철저히 동화되었기 때문에 두 민족을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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