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주정치론] 6.25 전쟁
- 최초 등록일
- 2005.06.21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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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6.25 전쟁
2.나의 생각
본문내용
전 세계에 유일한 분단 국가는 우리 나라뿐이다. 그러한 분단의 현실을 안겨주었던 가장 큰 배경이 된 것으로 6․25 전쟁을 말할 수 있다. 6․25 전쟁은 우리가 치욕스런 일제치하의 신민국 이었던 것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한 기쁨도 잊게 해준 전쟁이다. 더욱이 독립적인 해방이 아닌 외세에 의한 해방과 그 후의 행방에 대해 결정할 수 없었던 우리의 현실과 외세의 자국 이익을 위해 남은 미국의 손에 북은 소련의 손에 이끌려 각자의 정부를 수립하게되고 각자의 사상으로 합치려는 일이 발생해 지금까지 남과 북이 갈린 채로 살아가고 있다. 같은 민족이 총과 칼을 겨누고 각자의 사상을 중시하며 대화가 아닌 무력적인 힘을 사용하려 했던 점, 그리고 서로의 정부가 상대의 정부를 비방하고, 갈수록 골이 깊어지게 되자, 하나가 아닌 둘이 되어버린 것이다. 6․25전쟁의 3년간에 걸친 동족상잔의 전화는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었다. 전투병력의 손실만 해도 유엔군이 한국군을 포함하여 18만 명이 생명을 잃었고, 공산군측에서는 북한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의 병력을 잃었다. 또한 전쟁기간 중 대한민국의 경우 99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남한지역을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동안 인민재판 등의 무자비한 방법에 의하여 반동계급으로 몰려 처형당한 억울한 희생이었다. 또 전쟁기간 중 북한은 8만 5000명에 달하는 각계각층의 지도급 인사들을 대한민국으로부터 납치해 갔다. 이 가운데에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저명한 학자․종교인․공무원들이 상당수 포함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북한지역으로부터는 30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공산학정을 탈출, 자유로운 생활을 찾기 위해 고향과 가족, 친척들을 북에 둔 채 남한으로 월남하여 대한민국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1950년 당시 북한지역 인구는 1200만 명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그 가운데 1/4 정도가 북한을 떠나 월남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