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나운규 일대기와 아리랑
- 최초 등록일
- 2005.06.21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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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나운규가 이 작품을 쓰면서 쓰라림과 유모어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졸립고 하품 나지 않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는 점은 오락적 성향을 우선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많은 사람들이 <아리랑>을 민족적 울분을 표현한 영화처럼 평가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작 나운규 본인은 당시 유행하던 외국영화 분위기를 흉내내 템포 빠르고 규모가 큰 영화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목차
1.나운규
2.나운규의 일대기
3.아리랑
본문내용
나운규가 이 작품을 쓰면서 쓰라림과 유모어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졸립고 하품 나지 않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는 점은 오락적 성향을 우선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많은 사람들이 <아리랑>을 민족적 울분을 표현한 영화처럼 평가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작 나운규 본인은 당시 유행하던 외국영화 분위기를 흉내내 템포 빠르고 규모가 큰 영화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점은 <아리랑>의 영화적 성공과 의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 나운규의 영화사적 위상에 대해서도 재고하게 만드는 요소다. 나운규는 배우로 영화활동을 시작했다. 조선키네마 주식회사가 제작한 <운영전>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 그 시초였다. 이후 <심청전><농중조>등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영역을 넓혀가고 대중적 인기도 얻었지만 <아리랑>은 일대 전환점이었다.
배우로서의 나운규에 대한 평가는 극찬이었다. 지금까지 나온 한국 배우 중 제1인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영화 <아리랑>의 성공이 확산될수록 나운규 또한 배우로서 확고부동한 이미지를 다질 수 있었다.
'전 조선 각지에서 흥행을 하여 도처마다 큰 성공을 이룬 영화'(동아일보 1927.2.9) '여러 차례 상영하여도 인기는 그대로 올라가는 영화'(조선일보 1927.10.21) '아직까지의 조선영화 중에서는 가장 좋은 것'(매일신보 1928.4.3) '볼수록 더욱 감흥을 일으키는 영화' '조선영화계의 자랑거리'(동아일보 1928.4.3)----.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