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 율곡이이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5.06.12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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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율곡이이에 대한 사상과 생애 에 관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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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이이의 생애와 사상
1. 이이의 생애
2. 율곡이이의 사상
1. 리기론(理氣論)
가) 리기의 개념
나) 리기의 관계
(1) 리기지묘
(2) 기발리승
(3) 리통기국
3. 율곡전서
4. 강릉 오죽헌
Ⅲ. 맺음말
본문내용
1. 율곡이이의 생애
훌륭한 어머니 신사임당 밑에서 자란 율곡의 생애는 <율곡 전서>를 비롯하여 <남계 박세채 문집>에 실린 율곡의 연보와 <조선 왕조 실록>에도 간간이 실려 있는 기록을 토대로 알 수 있다. 율곡은 1536년(조선 중종 31년) 12월 26일 새벽 인시(3시~5시)에 강릉부 북평촌(현재 강릉시 죽헌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현룡(見龍)이라고 했는데 신사임당이 태몽에 용(龍)을 보았기 때문이다.
6세에는 어머니를 따라 한성으로 이사했고, 7세 때 글을 배워 벌써 한문의 문리(文理)가 통하고 유교 경전 사서(四書)를 모두 이해하였다고 한다. 또한 8세에 율곡(栗谷) 마을에 있는 화석정에 가서 한문시를 지어서 그의 천재성을 드러냈다.
1548년 율곡의 나이 13세에 진사(進士) 시험에 합격하여 그의 이름을 서서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나이 16세 되던 해 5월에 어머니 신사임당이 별세하는데 이 일은 소년 율곡에게 큰 충격이었고, 이때부터 율곡은 인생의 회의를 느꼈을 뿐 아니라, 학문 또한 스승 없이 혼자서 지식을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율곡은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간다. 입산 동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절(節)을 달리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율곡은 금강산에서 1년을 머문 뒤 산에서 내려와 강릉에 머물며, 22세에 성주(星主) 목사(牧使) 노경린의 딸과 결혼한다.
다음해 23세에 퇴계 이황을 만나고 그 해 겨울 과제에 급제했는데, 이때의 글이 우주론적 철학 논문이라고 볼 수 있는 <천도책>(天道策)이다.
율곡의 벼슬길은 그의 나이 29세 되던 해의 일이다. 그 해 여름 생원시험에 1등으로 합격하고, 9월에 정6품에 해당하는 호조 좌랑(戶曹佐郞)에 임명된 것이다.
그 후 33세의 나이에 사헌부 지평(持平)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외할머니의 병환을 이유로 벼슬을 버리고 잠시 강릉에 머물던 율곡은 34세에 교리(校理)에 임명되자 다시 서울에 올라왔으며, 이 해에 <동호문답>을 지어서 바쳤다.
이때부터 40세 불혹(不惑)의 나이에 이르는 동안 그는 병으로 인하여 처가가 있던 황해도 해주와 경기도 율곡 등을 맴도는데, 그 사이에도 청주 목사, 홍문관 직제학, 홍문관 응교, 춘추관 수찬관, 우부승지, 사간원 대사간 등의 벼슬에 임명되어 혹은 취임하여 나가고 혹은 사직하여 물러나는 진퇴(進退)의 과정을 되풀이했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황준연. 율곡 철학의 이해. 서광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