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일제시대의 잔재-음악부문에서
- 최초 등록일
- 2005.06.12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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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1)친일과 친일파의 역사적 개념
2) 음악의 사회적 영향
2. 본론
1) 일제말기의 시대상황과 어용단체의 친일음악활동
2) 홍난파(洪蘭坡,창씨명 森川潤,1898∼1941)
3)현제명(玄濟明창씨명玄山濟明,1902∼1970)
4) 친일음악이 현 음악에 미친 영향
3.결론
본문내용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일본제국이 만주땅을 점령한 이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거쳐 1945년 해방하기 까지의 15년동안은 조선총독부가 전시체제 아래서 한반도를 본격적으로 식민지화 시켰다. 이 전쟁기간 중에는 한반도 전체가 대륙진출을 위한 병참기지로 전락됐음은 물론이고, 한반도의 인적 물적자원이 태평양전쟁에 모두 징발되었다. 민족정기를 말살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선총독부는 일본국민으로 개조시키기 위한 소위 황국신민화 정책을 추진했고, 1940년 2월부터 미나미 총독이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을 국민들에게 강요하였다. 1940년대 전반기에 조선총독부의 황민화정책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어용단체로서 음악가들과 관련된 단체로는 국민총력조선연맹 ∙ 조선음악협회 ∙ 경성후생실내악단 이상 셋을 꼽을 수 있다. 이 어용단체들이 음악인들에게 어떻게 친일행각을 강요했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다.
내선일체와 신동아건설에 매진할 목적으로 결성된 국민총력조선연맹의 문화위원 68명중에는 홍난파와 박경호가 들어있었다. 이 어용단체에서 펼친 가장 중요한 음악활동의 하나가 1943년부터 시작된 ‘국민개창운동’ 이었는데, 이 운동은 당시의 노래책 ꡔ국민개창가집ꡕ에 포함된 “바다로 가면” ∙ “군함행진곡” ∙ “국민진군가” ∙ “아세아의 힘”과 같은 소위 국민가를 전국적으로 보급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조선연맹은 ꡔ국민가창운동정신대ꡕ 라는 가창지도대를 조직했는데, 조선음악협회와 손잡고 조직한 가창지도대의 조직은 지휘자1명 ∙ 독창자2명 ∙ 연주자1명씩 구성됐다. 이렇게 황민화정책에 매진화던 국민총력조선연맹은 조선국민의용대에 흡수됨으로써, 1945년 7월 10일 해산됐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