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시사] 이용악 신석정 노천명
- 최초 등록일
- 2005.06.11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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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이용악(李庸岳) 1914 - 1971
1. 이용악의 생애
2. 이용악 시를 보는 관점
3. 비극적 세계 인식과 환멸의식의 내면화
4. 不歸의식에 담긴 우울한 내면 풍경
5. 현실에 대한 열린 태도와 '귀향'의 새로운 의미
6. 결 론
부가내용
■ 신석정(辛夕汀) 1097 - 1974
■ 노천명(盧天命) 1912 - 1957
본문내용
이용악은 1914년 11월 23일 함북 경성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과 유랑, 가족의 해체와 같은 비극적 체험이 도드라지는 그의 시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는 가난에도 불구하고 경성보통하고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1934년 도일, 니혼(日本)대학 예술과를 잠시 다녔으며 죠오지(上智)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했다. 이 기간 중 신인문학 1935년 3월호에 시「패배자의 무덤」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잘 알려진 대로 그의 첫 시집 「분수령」과 제2시집 「낡은 집」(1938)은 모두 동경에서 간행되었다. 아용악을 두고 최재서는 "생활을 생활대로 생활에서 우러나는 말로 노래한다는 의미에 있어서의 인생파 시인"이라고 평했는데, 이런 시적 진실성이야말로 1930년대 후반 그가 서정주, 오장환과 더불어 조선시를 걸머질 '시삼재(詩三才)'로 불리게 된 근본 이유였다.
1939년 귀국한 후 최재서가 주관하던 "인문평론"의 편집기자로 근무하는 한편, 1940년 무렵에는 모종의 정치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기도 한다.
일제의 폭압적 식민 지배가 극에 달해 가던 때인 1942년 고향 경성으로 귀향했던 그는 해방이 되자마자 상경,'조선문학가동맹'의 맹원으로, "중앙신문"의 기자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제3시집 『오랑캐꽃』(1947)과 제4시집 『이용악집』(1949)을 내는 등 왕성한 시작 활동을 수행한다. 1949년 모종의 정치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